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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l 19. 2023

보통의 예술가 1

나무인간 47

본 텍스트는 2018. 10, 27 - 12, 13 사이 진행된 손지훈 개인전 `보통의 미술가`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프로그램 2018, 쇼앤텔(대안공간, 양평동 소재)에 전시된 비평문입니다.


      

 하소연


 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KTX 부산행 첫 차를 타고 대구의 공장으로 출근합니다. 비단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서- 가 아니라, 솔직히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미술공간을 운영하게 돼 버린 이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지킬 것이 생기면 반드시 무얼 해서라도 챙겨야 합니다. 그게 어떤 일이든지, 그걸 사람들은 인생이라 부를 겁니다. ‘나는 내 미술을, 내 공간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지금 제게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말 간 표백제에 세척된 영혼을 짊어지고 새벽녘 서울을 뜹니다. 격주 근무지만, 도착하면 사일 이상은 당장 촉수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저 책상 위 모니터를 켜고 끄길 반복해야 하는데, 스위치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건 퍽 고달픈 삶의 연속입니다. 고속열차 출근길도 이골이 날 지경이니까요. 일단 저는 하소연을 해야 됩니다. 그 사정이란 제게 맡겨진 회사의 업무가 결코 소임이라 할 수 없는 탓입니다. 자재 입출고 관리에 장비 구매 견적 검토, 직접 납품하고, 제품 안내책자 디자인에 영, 일어 통번역과 출장까지- 여러분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봐도 중소기업의 일개 사원이 견딜 수 있는 몫 그 이상입니다. 차라리 단순노무만 한다면 다른 업무스트레스라도 없으니 좋으련만, 사회와 타협한 대가로 일주일 중 사 일을 버리고 그저 삼 일을 얻는 것에 저는 만족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의 총책임자를 아버지라 할 순 없습니다. 다만 회사 일을 배우라는 암묵적이고 집요한 요청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꽤 오래 고민도 했지만 저는 혈연으로서 주어질 사명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단의 기저엔 늦지 않은 나이에 발현된 가족애와 사회적 책무에 대한 결연한 다짐 같은 게 있었습니다만- 엄밀히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당찮게- 늘 자기중심적 소동극의 주인공으로 자란 저라는 아이도 어느덧 집안의 두 번째 남자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은 나면 뭐라도 하며, 먹고, 자라서, 성체로 짧은 전성기를 누린 후 노쇠하며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말인 즉 저는 집안의 두 번째 위치에서 피할 수 없이 그 위로 오를 터인데, 그 사이 일인자의 전성기가 지난 것도 모른 채 제멋에 지내다간, 머지않아 가족을 향한- 어쩔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게 뻔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바람대로 미술인간이 되고자 하는 소망은 고사하고 제 양심마저 지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엄습했다-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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