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선택한 나. 엄마와 아들 : )
남편과 약 7년간의 연애생활을 마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면서 대전으로 갔기 때문에 낯설었다.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동네, 모든 것들이 새로운 거 투성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결혼생활도 직장생활도 적응하느라 약간의 시간들을 보내고 낯선 느낌이 주는 긴장감이 좋았다.
남편과 나는 신혼생활을 조금 즐기다가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신혼생활을 1년 정도 보냈을 무렵 1월 설날과 함께 임신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태명도 '까치'라고 지었다. 새로 올 손님, 반가운 손님이란 의미였다.
28의 나는 임신 기간에 딱히 힘듦이 없었다. 밤마다 먹고 싶은 게 달라서 "이거 사줘, 저거 사줘 아니야 이젠 안 먹고 싶어."를 내뱉고 싶었는데,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연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순조로웠다. 뱃속의 아이도 개월수대로 잘 컸고 엄마인 나도 적당히 먹고 놀고 쉬고 했다. 10월 13일이 예정일이었고, 회사에는 9월 마지막 날까지 출근을 했다.
10월 1일부터 부지런히 까치를 위해 손수건을 삶고, 내복을 삶고, 이불을 빨고, 속싸개, 겉싸개도 준비하고 언제 배가 아플지 모르니 출산 가방도 미리 싸뒀었다. (산부인과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날짜가 13일로 정해져 있으니 이상하게 날짜를 맞추고 싶었다. 대부분의 산모는 초산일 경우 예정일보다 늦어진다고 했기 때문에 13일에 낳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런데 뭐랄까 이상하게 초조(?)했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아이가 일찍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당시 살던 아파트가 25층정도까지 있었는데, 예정일 2-3일을 남겨두고는 하루에 두 번 계단을 탔다. (그땐 왜 그랬나 모르겠다. 때 되면 나올 것을... )
디데이가 되었다. 2013년 10월 13일.
일요일이었고, 새벽 5시쯤 진통인가? 아닌가? 하는 진통을 느꼈다. 벌떡 일어나서 일단 샤워를 했다. 머리를 부지런히 말리고 욕실을 대충 치워두고 나왔는데도 아직 6시 전이었다. 남편을 깨웠다. 오늘 '까치'가 나올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어플을 이용해서 진통 간격을 측정했다. 30분 정도였던 거 같다. (사실 이젠 기억이 정확지 않다.) 주변에 아이를 낳아본 아는 언니가 있어서 물어봤더니 아직은 병원에 가도 크게 할 게 없다고 했다.
거실에 나와서 티브이를 켰다. 남편과 다시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봤다. 티브이를 보다가 약간의 진통이 느껴지면 다시 앉아서 호흡을 하다가 다시 누웠다가를 반복했다.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넘어갔다. 아픈 와중에도 배가 고팠다. 이따(?) 힘쓰려면 고기를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소고기를 사 왔다. 등심을 잘 구워서 점심으로 먹었다.
먹다가 아프면 잠시 쉬고 다시 먹고, 누웠다가 아프면 앉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4시쯤 되었을 때 진통 간격이 15분 정도였던 거 같다. (확실하지 않다.) 아까보다는 더 아팠고 주기도 짧아지니 무서움이 먼저라서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28살의 만삭 임산부는 씩씩하게 잘 걸어갔다. 병원 가서 내진을 하고 언제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옷도 갈아입고 변신 가능한 침대에 누웠다. 까치를 낳았던 병원은 신도시와 함께 새롭게 지어진 6층의 건물이었고 소아과와 산부인과 출산 그리고 조리원까지 연계된 큰 병원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니 시설도 좋았고, 장비들도 다 새 거였다.
처음 병원 갔을 때 약 1센티인가? 2센티가 열렸다고 했었다. 의외로 참을만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6시가 막 넘어갈 때 진통의 주기도 짧아지고 진통의 강도도 세졌을 때, 무통주사를 권하는 간호사가 왔다. (50프로 정도 진행되었다 했다.) 근데 뭐랄까.. '내가 생각한 출산의 고통이 100이라면 아직 30인듯한데 참을만한데?'라는 생각을 했고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안 맞고도 잘 낳을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남자는 군대 이야기, 여자는 출산 이야기로..)
그렇게 런닝맨을 남편과 보다가 (나는 런닝맨을 보는 남편을 째려봤던 거 같기도 하고...) 양가에 병원에 왔다는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초산이라 워낙 늦어질 수도 있어서 괜히 부모님들 피곤하게 할까 봐 연락을 안 하고 있었었다. 남편이 전화를 다 하고, 7시 50분쯤이었던 거 같다. 런닝맨은 막바지였고 내 출산도 임박했다. 드디어 티브이가 꺼지고 침대가 변신을 하더니 의사 선생님이 입장하셨다.
그때부터 기억나는 거라곤 "소리 지르지 마시고 똥 눈다는 생각으로 힘을 주세요"였다. 난 최선을 다해 소리를 삼키며 똥 누듯 힘을 줬다. 남편말로는 간호사 선생님이 배 위에 올라가서 눌렀다는데 기억이 없다.
아까 건방지게 무통주사를 맞지 않는다고 얘기한 나에 대한 후회만 있었다.
내 기분으로 좀 짧았던 거 같은 그 시간이 (기절을 했었을까?.. 기억이 잘 없다.) 거의 30-40분이었고, 8시 34분이 되어서야 까치는 내 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산모님 여기 아기요"라는 소리를 듣거나, 아이를 처음 안아보거나, 아이가 몸 밖으로 나오며 '응애'하고 우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다고 했는데.. 난 내 옆에 누워있는 그 작은 걸 보면서 '뭐지? 이 못생김은? 진짜 내 몸속에 있던 건가'라는 생각으로 울진 못했다.
그렇게 남편과 아이는 분만실에서 나가게 되었고, 나와 의사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 3명이서 후처리 (다 찢어진 거 꿰매는 작업)를 하면서 농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산모님, 혹시 군인이세요?"
"네? 아닌데요,, 왜요?"
"고통을 너무 잘 참으시길래 군인인 줄 알았어요."
칭찬 많이 못 들어봤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칭찬을 받았다.
아기를 낳으면서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면서 아픈데 안 아픈 그런 시간이었다.
(출산 후 다음날부터가 몹시 아픔..)
입원실로 옮겨지고, 남편이 찍어온 까치 사진을 몇 개 보고.. 12시엔 무려 카카오스토리에 출산 글도 적었다.
28은 젊었다. (지금의 내가 느끼기엔..)
아이를 낳는 일도 참 수월했다. 첫째를 낳고 나면 임신기간과 출산 때가 생각나며 둘째는 엄두도 못 낸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비교적 수월했다. 누가 키워만 준다면 셋도 넷도 낳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아이 낳을 생각이 있다면 결혼을 일찍 해"
나도 공감하는 말이다. 출산도 육아도 조금은 쉽다. (체력이 그지 같다고 느껴도 지금보단 훨씬 좋았으니까..)
남편과 결혼을 할 때는 '내가 선택한 이 사람이 틀리지 않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많이 했다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며 '네가 선택한 내가 틀리지 않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그때부터 어른이 되고 싶었다.
28은 아이를 낳기 너무 좋은 나이였다. (낳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