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6 시작 03화

29살, 그게 산후우울증이었다.

지나 보니 우울보단 행복.

by 쏜맹


친구들 무리에서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생활을 하다 보니 뭐든 처음이었다. 출산과 육아가 너무 낯설었다. 너무 모르는 분야였기에 '삐뽀삐뽀 119' 책을 전공책 공부하듯 밑줄 긋고, 인덱스 붙이고 열심히 공부했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전은 다른 법.. ("웅애애애애ㅐ" 울기 시작하면 기억상실)


아이를 낳고 정기적으로 만나던 친구들과 일 년에 2번씩 만났었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1박 2일로 그때그때 떠나고 싶은 국내의 도시들로 떠났었다. 지금생각해 보니 그런 시간마저 없었다면 나는 우울증을 크게 앓았을 것 같다. 당시 나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2-3년 동안은 친구들의 연애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다. 집에 두고 온 아이가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친구들도 한두 명 결혼하기 시작했고, 아이를 출산한 친구도 생겼다.


그 친구가 나에게 "너는 왜 힘든 일이 없는 사람인 거 같냐?"라는 질문을 했었던 적이 있다.

내가 참 해맑게 웃고 있었나 보다. 그저 애 안 보고 놀러 나와서 신난 거였는데 그 해맑은 웃음이 친구에겐 근심걱정 없어 보였 나보다. 그땐 이미 우리 아이 2살이 넘었을 때였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으로 이동한 후에는 남편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었다. 몸도 아프고 감정도 널을 뛰고 모유는 안 나오고.. 당시 집 앞에 새로 생긴 조리원은 오픈 이벤트로 정말 좋은 가격에 스위트룸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그렇게 안 했을 텐데,, 그땐 그 좋은 방에서 젖 짜면서 매번 울기만 한 거 같다. (더불어서 좋은 유축기 따위 검색...)


집으로 돌아와서는 상황이 더 힘들었다.

친정은 안동이고, 시댁은 대구라서 주변에 도움을 구할 어른도 없고, 가볍게 수다를 나눌 지인이 있는 동네도 아니었기에 급격하게 우울증에 빠졌었다.


낯설고 새로워서 좋았던 동네가 삭막하게 느껴지고 마음 둘 곳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생각하면 남편도 퇴근해서 집으로 오기 싫었을 것 같다. 문만 열면 눈물 질질 흘리는 와이프와 매번 잘 안 자는 아들까지..


까치는 태어나서 돌 때까지... 심지어 8살 때까지 통잠을 잔적이 없다. (블로그도 애가 너무 안 자서 시작했었다..) 돌까지는 밤에 적으면 1-2번 많으면 4번도 넘게 깼다. (이놈의 효자자식.) 덕분에 인생최저 몸무게를 가져보기도 했었다.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엄마는 내 딸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까치에게 말했었고, 오랜만에 본 시부모님은 한약을 바로 사서 보내셨다.


100일이 지나고 기적을 기대했지만 기절을 선물해 줬고, 그래도 다행인 점은 유모차에 태워서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는 거다. 다시 동네를 산책하고, 숨은 커피숍을 찾고 아이의 낮잠타임을 참 알차게 이용했었다. 그렇게 사람이 밖에 나가고 걷는 행위만으로도 우울한 감정이 해소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던 거 같다.


마냥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아기 키우기는 하루에 두세 번 이유 없이 그냥 보고 있으면 웃음을 나게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잠이 와서 다크서클도 가득이고, 언제 감았나 싶은 머리와 젖 비린내 나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났던 거 같다. (시간이 지나서 좀 미화된 듯) 가끔 그날들이 너무 그립다.


퇴근한 남편과 내가 아기침대에 누워있는 아기를 마냥 바라보던 순간의 시간들이 있었다. 하루의 루틴처럼 목욕을 시키고 뽀얗게 만든 아이를 마냥 바라만 보던 그 순간. 여섯 개의 눈동자는 서로를 담고 있었고, 그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그 순간은 완벽한 행복이었다.


마침내 우. 리. 가. 족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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