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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Oct 12. 2021

1217호 두번째

죽는 일상의 기록(2)

1217 두번째


오른쪽 입구쪽 6번 자리는 계속 존재감이 없었다

두어 차례 동안,  의식이 없고 움직임이 없고 목소리가 없는 환자와 간병인이 함께 다녀갔다. 보호자를 볼수 없으니 무슨 사연으로 1217호에 함께 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수가 없고 그 자리에는  먼가 거창한 기계를 동반해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 봐야하는 역할을 수행 중인 간병인들인지라 마주치기 힘들었다.

병실 입구자리라서 들어가고 나올 때 가끔 커튼이 열려져 있으면 비스듬히 기대 운 초점없는 눈빛과 창백하다 못해 백색의 얼굴 빛을 가진 환자들과의 이따금의 눈마주침이 다였다.


그럴때면, 저 환자에게는 낯선 이와의 만남이, 어쩌면 내가 유일한 외부와의 접촉일텐데, 따스한 눈웃음을 건넬 마음의 여유를... 잃은 지는 좀 오래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찰라의 쨘한 눈 마주침과 함께 곧장 건너 편 가장 안쪽 자리로 향한다.

그러면 새우처럼 모로 꼬부라진 채로 힘겹게 누워있는 엄마의 작은 등더리가 보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 왔어. 밥은 먹었어? 엊밤은 좀 잤어?"함서 인사말을 건네며 조금 전에 찰라의 동정심마저도 니가 지금 그럴 처지냐며, 내 뼈 속 깊은 곳의 연골을 쌩으로 도려내어 정신도 못 차릴 만큼 커다란 아픔을 느껴버리야지, 니가 정신이 들테지하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은 지금 당장에 내 하나뿐인 엄마의  꼬부라진 등더리라고. 니가 아주 여유롭구나 하며 나를 혹독하게 혼구녕을 내어본다. 그러곤 커튼을 확 닫는다.

아무것도 보지말자. 아무생각도 하지말자.

엄마만 볼꺼다. 저 가엷은 엄마뿐이 나는 모른다.

세상에 나와 아니, 우리 독수리4남매와 엄마보다 불쌍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술을 잘근 씹어본다.



3주 차 첫 날에 6번 자리의 환자는 무슨 몹쓸 균 침입했는지, 우주복같은 방역 옷을 입은 간호사들의 손에 이끌려 일인실, 무균실로 갔단다.

옆자리 곱은 보영어매는 수술하러 떠나고 회복실에서 하루이틀보내는 사이에, 담석제거 수술을 한 환자가 새로 우리의 대각선, 가운데 5번 자리를 차지했는데, 보호자인 남편이 무균실로 이동하는 6번환자에게 무슨죄를 지었기에 독방에 잡혀 가냐며, 싱거운 농담을 건네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어제 새로온 승찬이어매의 새 간병인 ㅡ 전 간병인은 도저히 승찬어매를 감당 못 하겠다고 떠나고 부산에서 왔다는 새로운 간병인이 어제부터 상주했다ㅡ 혹시 코로나걸린 것 아니냐며 불안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어마무시하게 살벌한 수준의 소독을 하더니 그날 오후께 새로운 환자가 왔다.


머리를 빡빡 밀은 여자 스님이 6번 입구 자리에 새로 왔다며 갱년기가 컨셉인 독수리1호 큰언니가

"스님인데 자식도 있고 남편도 있네~" 하고 교대했다. 

그 옆5번자리 담석을 깬 환자는 그저께 1217호 입실과 동시에 목사님부터 집사님, 장로님, 아무튼지간에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에서 부르는 호칭의 관계자는 다 모인 듯한 지인들로  대여섯 명이 와서 단체로 소란스럽게 10여 분을 수술성공과 빠른 회복을 위한 기도를 속사포처럼 퍼부어놓고 떠났는데...

오늘은 그 옆자리에 스님과의 합방이라. 흠... 이것이 진정한 종교대통합이구나 싶었다. 병마앞에서는 하나님도 부처님도 별수없이 침대를 나란히 두고 아픔을 공유하는 동등한 위치 인생이 아이러니해서 잠시 웃었다.

생각보다 종교의 대통합은 평화로웠고 5번과 6번 자리는 큰 갈등없이 한동안 고요한 1217호였다.


옆자리 승찬이 어매도 무슨 일인지, 새로 간병인이 오고 나서는 이따금씩 들려오는

"여기가 어딘교?"의 멘트가, 시작과 동시에 딱 거기에서 멈추는 일이 더 많았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제정신이 돌아 오신  것인지, 아니면 승찬이 어매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이제는 토해보고 소리를 질러보아도 별소득없이 완치때까지는 퇴원도 안 되고 승찬이가 오지도 않을 것을 알아 챘는지, 병실에서 난동부리는 일은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이제는 3주가 넘어는 긴 병원생활에 살짝  무기력해지고 넘 일에는 관심이 사그라질 쯔음이라 누가 오고가는데 그닥 신경이 쓰이지가 않때였는데, 그 오른쪽입구 6번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정체성이 모호한 스님 환자도 엄마와 비슷한 말기암환자인데다, 치료법도 엄마와 비슷하게 표적항암치료제로 항암 해왔다고 하고, 더군다나 표적치료를 한지 무려 1년이상 환자라고 했다.

암의 완치 판정이 5년이라는데, 완치를 바라지않아도 암세포를 가지고서도 5년을 잘 연명할수있다면, 그것 또한 완치만큼이나 기쁠 일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그 말기암 1년째 항암 치료생존중인 환자가 마치 엄마의 롤모델인 양 예의주시했다.


말기암 진단받은지 이제 막 2개월째에 접어들어 표적항암제 처방 2주를 겨우 이겨낸 새내기 암환자인 엄마랑은 짬밥이 완전 다른 듯한 경외감에 그들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분명 살만한, 아직은 죽을 만치 아픈 거 같지는 않은 카랑한 목소리로 의사님께 아프다고 하니,  의사님은 진통의 유형과 간격 등을 상세히 묻고 독한 진통제를 줄까, 항생제를 맞으까, 항암은 언제쯤 다시할까, 하는 멘트들이 엄마의 주치의님과의 대화 패턴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인턴옷을 입을 저님은 좀 더 다정하고 쨘함이 배여 있는 말투이고,

우리의 냉철하고 까칠한 주치의님은 살짝 몬~때게 말하긴 하지만 누가 봐도 암세포보다는 날카롭고 독하고 야무지게 보여서 암만 까칠한 말을 내뱉어도 당신의 그 날카로움으로 몹쓸 암세포 따위는 몽땅 물리쳐  거라는 신뢰와 믿음이 가득찬 말투라서 우리가 전적으로 믿고있다는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그 말씀들을 하나라도 잊지 으려고 단디 적고 기억하며 절대적으로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마치 병원에서 주치의담당의사는 그 환자의 생명 연장과도 바로 직결되는 신같은 존재라서 그렇게 단디 적어두는 것이리라.


인턴님께서 항암을 언제 다시 할까 일정을 물으니   단단해 보이던 스님 환자도 화들짝 놀라며

"그거는 안할래요. 항암, 그거는 안할꺼예요." 하며 손사래를 친다.

"표적항암제, 그거 너무 힘들어. 인제 다시는 안 할래." 하는 6번에 폐암말기 환자의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아.. 늙고 당뇨라는 지병도 있고 또 열정 넘치지만 병간호는 처음인 독수리4남매의 간병아래에 있는 엄마만이 저 표적치료인가 항암 머시깽이가 힘든 게 아니었구나.

1년째 정기적으로 항암치료를 받아 저렇게 카랑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생존해 온 이도 손사래를 칠만큼 힘든 일이었구나.

그런 일을 엄마가 견뎌내고 있었다.




3주하고 4일만에 두 번째 병원생활을 끝내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입원 때는 기운은 없어도 분명히 엄마는 스스로 두다리로 걸어서 입원했지만  번째 퇴원때 엄마는 혼자의 힘으로는 걸을 수가 없어서 둘째 사위와 독수리3호 아들의 부축을 받고 독수리1, 2호의 호위를 받아 2층인 집까지 무사히 귀가할 수있었다.

2층 엄마집에 엄마를 올려 놓는데 시껍한 독수리2호는 그날로 바로 당근마켓에서 휠체어를 주문했다.


3주하고 4일 동안 단 한발짝도 걷지 않고 침대에만 붙들려 있느라 다리에는 근육이 다 빠지고 살가죽과 뼈의 윤곽 만이 앙상하게 남아, 80여 년동안 평생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어 걷는 법을 잊어 버려서 다시 걸음법을 연습해야 한다는 서글픈 숙제를 가지고서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나 많이 싸돌아 다니고 집에서도 가만히 못있는 엄마였는데, 금세 걸음을 내딛을 것으로 리는 믿고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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