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
이 여자가 바로 나라고 믿는 건 그동안 내가 본 타인의 얼굴을 네가 그대로 보여 주었듯
이 지금 네 앞에서 얼굴을 매만지고 있는 손은 하루에도 수 없이 움직여 돌출된 지렁이 무
늬로 꿈틀대는 푸른 정맥 하며 울퉁불퉁 옹이진 마디들이 내가 매일 만지고 들여다보는 그
손이 틀림없으니 저것은 분명 나인 것이다
나는 나를 마주 보며 확인할 수 없고 너에 의해서만 인지할 수 있으니 " 거울아 세월
을 딱 반만 뒤로 돌려 네 속에 저장된 나를 꺼내 보여줘 " 주문을 해보는데 차가운 너는
" 나는 고개를 돌려 너를 거부할 수 없듯 너의 기쁨을 따라 웃고 너의 슬픔을 함께 하고
너의 울분을 흉내 내 보지만 손을 내밀어 너의 눈물을 닦아 줄 수는 없었다" 라며 건조한
모습만 보여줄 뿐 증발한 나를 소환해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제 앞에서 무수히 지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변해가는 모습을 깊숙이 저장해
놓고 저 혼자 킬킬대며 즐기고 싶은 모양이다
거울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은 다행이나 있었던 내 젊음을 부정하는 것은
못내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 쓸쓸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