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끄트머리,
몇 편의 '시'를 꺼내어 본다.
단풍 / 김순호
발화 (發火) 하는 산 산 산
푸른 몸으로 어우러져
숲을 덮어가는 여름엔 몰랐다
네가 노랑인지 빨강인지 갈색인지
노랑이 빨강에게 빨강이 갈색에게
네 색은 틀렸다 밀쳐냈다면
나는 노랑 너는 빨강 당신은 갈색으로
다름의 아름다움을 펼칠 수 있었을까
허공이 끌어안은 겨울 산
죽음처럼 딱딱한 알몸을 바람은
차별 없이 핥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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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 김순호
멀리서
바람이 가로수를 빙빙 돌아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차츰 가까워지는 바람은
나무마다 간지럼을 태우는지
한 나무가 흔들리다 멈출 즈음 다시
앞에 선 나무를 흔들며 다가온다
또 바람은
나무 밑에 깔린 낙엽들 속으로 기어들어가
쿡쿡 쑤셔대기도 하는데
숨을 불어넣은 듯
부서진 낙엽들이
회오리치며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점점이
어디론가 흩어져 가는 낙엽 들
기척에 놀라 일제히 날아가는 참새 떼처럼
살아있는 듯 살아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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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 김순호
이제 보니
너희들의 삶도 무거웠구나
보이는 곳마다 가는 곳마다
타닥타닥 튀어 오르는 불새들의 날갯짓
다 짊어지기엔 힘에 겨워
해마다
생비늘 벅벅 긁어 태우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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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애가 간다는 건 / 김순호
비를 맞으며
아스팔트를 움켜잡고 있던 커다란 플라타너스 손바닥
이젠 질긴 핏줄만 남긴 채 만신창이로 해체되고 있다
비는 개이고
햇빛은 칼날에 베이듯 섬광처럼 번쩍이는데
밤새워 푸석한 내 얼굴을 할퀴고 달아나는 낙엽들
선뜻 내려앉지 못하고 몇 번인가 튕겨가다 멈춘다
한가로운 봄 나비인 듯
거리엔
진공청소기처럼 낙엽을 빨아들이며 가는 자동차의 행렬
한 생애가 간다는 건 저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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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 김순호
나뭇잎이 지지직 끌려가다
빠져들지 않으려
하수구 거름망을 잡고 버틴다
엉덩이를 빼고
땅바닥에 두 줄을 그으며 끌려가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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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하나 / 김순호
후두둑 빗방울을 맞고 떨어지는 낙엽을 주워 들고 왔다
작은 나뭇잎은 선홍과 주황 노랑 갈색을 흩뿌리며
색의 마술을 펼쳐가던 중이었나 보다
얇디얇은 단풍잎은 살이 발려진 생선처럼 선명한 잎맥을 뻗어
날카로운 톱날 같은 끝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것으로 손등을 쓸어본다 수액이 끊겼음에도
까슬까슬 날을 세운 생기가 하얀 선을 그으며 쓰리게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