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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Feb 28. 2024

사랑의 탱크

그건 엄마 아빠가 채워줄게!

아이의 책가방과 식탁에서 4개의 다른 책을 발견했다.  모두 책갈피가 꽂혀 있는 거 보니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다. "이걸 다 같이 읽는 거야?"

"어.. 식사할 때 읽는 책, 학교에서 읽는 책, 화장실에서 읽는 책 또 심심할 때 읽는 책"

"그럼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하나만 집어서 읽는 게 더 집중할 수 있고 좋지 않을까?"

"아니~ 나 다 기억해.  얘기해 줘?"


아이는 조잘조잘 4권의 책 내용을 줄줄이 읊는다. 아이는 현재 4권의 책을 돌려 막기 식으로 읽고 있고 잠들기 전에 나와 함께 읽는 책까지 합치면 5권이다. 나이에 비해 꽤 인상적인 독서습관인데 학교에서 독서를 매우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프로그램 때문에 집과 학교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책을 읽고 미니 퀴즈를 풀어 맞혀서 점수를 모으면 학기말에 교장선생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선물을 받는다.)


아이는 아이패드가 있다. 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딱 30분씩만 쓸 수 있다. 아이는 주말에 주어진 30분 동안 만화를 보거나 해리포터 배우들의 이름을 구글 해보곤 한다. 아이의 친구들 중에는 아예 아이패드가 없는 집도 있고 우리 집처럼 주말에만 정해진 시간에만 쓸 수 있게 한다. 딸아이와 가장 잘 어울려 지내는 3-4명의  친구들 모두 이런 방식으로 집에서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 흔한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도 하지 않는다. 전자기기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녀석들은 만나면 뛰어놀거나 해리포터 시리즈 연극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린다.


나는 아이에게 자율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치려 노력을 했다. 처음에는 전자기기를 매일 30분씩 쓸 수 있게 해 줬으나 전자기기가 가져오는 즐거움으로 인해 엄마와 약속한 30분을 훌쩍 넘겼다. 그런 일들이 많아지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눠야 했다.

"엄마랑 아빠는 널 믿기 때문에 아이패드도 자율적으로 쓰게 해 줬는데 지금 약속을 자꾸 어기는 일이 생기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 아빠는 너한테 하는 약속은 사소한 거라도 다 지키는데 네가 우리한테 한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계속 그러면 엄마 아빠는 너에 대한 신뢰가 점점 사라질 것 같아"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일은 가장 공포스러운 일이다. 어떻게든 엄마 아빠의 기쁨이 되고 싶은 아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보였고 그 결과가 주말에만 전자기기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대신 전자기기가 메꿔줬던 심심함은 엄마 아빠가 채워줘야 한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놀아주며 아이의 심심함을 달래줘야 하는 역할은 무조건 부모가 해야 한다.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네가 알아서 놀아라고 말할 순 없다.  보드게임도 하고 산책도 하고 요리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비즈팔찌도 만들면서 심심할 틈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아이패드보다 더 즐거울 때 전자기기에 대한 마음도 수그러진다.


아이를 양육하는 건 보통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나눠주고 아이가 더 필요하다고 하면 더 주는 일이 허다해야 아이와의 관계가 성립되고 깊어질 수 있다.


예전에 동네를 돌다가 너무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빠와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들이 강아지를 끌고 산책 중이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가만히 서서 얘기를 듣다가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냥 안아주는 게 아니라 가슴에 머리를 대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아이를 안아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던 건 중학생이나 된 아이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위안을 얻고 있는 그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뻣뻣하고 엉거주춤한 모습이 아니라 늘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그 둘은 깊은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다.  


저 둘의 관계는 분명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버지의 노력과 사랑이 부어져서 가능한 게 아닐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거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너무나 부모와 깊이 연결되고 싶어 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며 놀고 싶어 한다.  부모라는 존재를 인식한 순간부터 말이다.  그 마음을 읽어주지 않으면, 아이의 사랑의 탱크는 점점 메말라 간다.  그 어느 날 사랑의 탱크가 바닥이 보이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바닥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양육은 끊임없는 노력이 부모에게서부터 시작되면 아이는 반응한다.

영어 한 단어라도 수학 한 문제라도 더 풀게 하는 노력이 아니라,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그 마음을 전달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바운더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래서 아이의 어깨에서 세상을 향해 우아하게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자라게 하는 일이 부모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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