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어떻하지?
❚어설픈 미국 유학생의 솔직한 고백
솔직히 고백하건데,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내가 가진 미국 문화에 대한 생각은 엉터리투성이었다.
전체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문화가 너무 싫었다. 그 싫은 감정만큼 미국 문화를 미화하고 있었다. ‘한국은 이렇지만 미국은 아닐 거야’하는 나의 기대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자유로운 미국사람들의 사고 방식, 삶의 방식, 그리고 미국 문화를 동경했다.
그런 주관적이고 왜곡된 생각 때문에 5년간의 미국 유학기간 동안 나는 많은 심리적 고충을 겪어야 했었다.
❚영어를 배우는 학습자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일
Guiora (1980)는 인간은 5세 가량부터 모국어에 대한 자아 정체성(Language Ego)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모국어로 의사소통이 증가함에 따라 모국어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고 한다. 외국어를 배울 때 우리는 제2언어정체성(Second Language Ego)을 발달시키게 된다고 한다. Brown (2007)은 제2언어정체성이 생기면 새로운 모드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고 한다.
어른이 되면서 모국어에 대한 언어 정체성은 강화되는 반면 새로운 언어에 대한 언어정체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불편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새로운 언어에 대한 거부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모국어 언어 정체성과 목표어 정체성의 대립이 발생한다고 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내가 극복해야 한 것들
한국문화와 미국 문화 사이의 간극을 감당해야 했다.
상상속에 만든 미국 문화와 현실의 미국 문화 사이의 간극을 감당해야 했다.
상이하게 다른 두 문화와 언어를 배우면서 가지게 된 나의 한국어자아정체성(Language Ego)과 영어자아정체성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했다.
미국 문화를 찐하게 경험하면서 나의 영어자아정체성을 단단하게 가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유학생활의 소소한 마음 고생
친절한 이미지의 영어 스피커들이 나에게 늘 친절한 것 만은 아니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해결하기 위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서운한 마음과 화난 마음을 삭혀야 했었다. 정말 치사스러울 만큼 유학생 경제활동에 대한 규정이 많았고 철저하게 나의 학비를 빼앗아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해질 듯 말 듯한 그 어정쩡한 인간관계는 도무지 내 인생에서 맛보지 못한 밀당관계였다.
그런데 더 속터지는 것은 나만 그렇다는 거다. 미국 현지인들에게는 그런 어정쩡한 관계는 소위 “프라이버시 존중”이라는 멋진 말로 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더 친해지려는 나의 마음만 어색하게 여겨진다.
미국 백인들이 다니는 교회를 거의 3년간 다녔다. 교인이 300명이 채 안되는 별로 크지 않은 교회였다. 그런 교회를 3년간 다녔으면 왠만한 사람들과는 한 번씩 대화를 나눌 법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늘 두 칸이나 세 칸 뒤에 앉는 사람들과도 늘 대면대면하는 관계의 연속이었다. 특히 나와 연배가 비슷한 한 사람은 그 세월동안 이야기 한 번 걸어 오지 않았다.
그 교회에 유일한 동양인 가족이라 나 스스로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감정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사람이었으면 현지 사람으로 먼저 이야기를 걸어왔을 것 같다.
그런 미묘한 무관심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그저 팽겨치는 듯한 느낌의 무관심은 나는 무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한국문화에 젖은 나의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그건 지극히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다.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일지라도 언제나 번개 모임을 하기에는 애매한 사이였다. 그렇게 현지 미국 사람들은 식구이외의 사람들과는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이 몸에 베여있다.
대학원 수업이 저녁에 있는 날이면 혼자 낼름 저녁 대용의 무언가를 수업 중에 먹는 현지 미국인 친구가 참 얌체인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 정작 그 본인은 전혀 미안하거나 어색함이 없어 보였다.
늦은 저녁, 우리 딸이 교회 행사에 갔다가 다들 순식간에 다른 건물로 가버리고 혼자 덩그라니 남은 적이 있었다. 남을 먼저 챙겨주지 않는 그들의 행동에 나는 분노했다. 교회 장로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청소년부 디렉터라는 20대 청년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려고 기를 썼다. 물론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사과는 사과일 뿐 그 이후로도 먼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우리 딸을 챙겨주는 제스추어는 볼 수 없었다. 천성이 불친절한 사람은 아닌 듯 해보였다. 하지만, 세세히 챙겨주는 우리나라 사람의 모습을 그들에게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게 인종 차별이라고 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라 마다 행동양식이 참 다르다는 사실 만은 뼈저리게 느꼈다.
집 앞 야드 세일은 보통 필요없는 물건을 값싸게 처분하는 그런 행사이다. 이제는 당근마켓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있던 그 당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야드 세일을 주말에 이따금씩 하곤 했다. 내가 살던 주택 단지에 교회 장로님 댁이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면서 야드 세일을 하는 걸 봤다. 팔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금은보석이 아닌 그저 장신구로 쓸 팔찌였다. 2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2불을 받아갔다. 한국사람 같으면 아는 사람이 그것도 외국에서 유학 씩이나 하러 온 사람이 자신이 쓰던 팔찌를 마음에 들어하면 그저 선물로 주고 말았을 것이다. 사는 게 여유로워보이는 그 부인은 악착같이 내 돈 2불을 챙겨가셨다.
이건 순전히 한국적인 마인드로 이 사태를 해석한 일이다. 그들에게 그 돈 2불은 지극히 당연히 받아가야 할 돈이다. 오히려 2불을 받지 않으면 내가 무시 받는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큰 돈이 아니기에 2불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돈에 대한 가치는 다르고 문화마다 다르니 그분의 의중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돈에 대해 분명 우리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돈돈거리는 게 나쁘게만 생각되는 우리 문화에 비해 미국 문화에서 돈은 긍정적 이미지가 더 씌워져 있는 것 같았다.
❚영어가 딱 싫다!
그들의 문화는 나의 기대와 너무 달랐다. 실망을 넘어 마음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반감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사단이 났다.
영어가 딱 싫어졌다.
지긋지긋해졌다.
누구든 나한테 영어로 말 걸면 주먹으로 한 대치고 싶어졌다.
영어를 생각하면 구역질이 났다.
미국 사람이 딱 싫어졌다.
❚큰 산을 넘었다.
현지 생활을 하는 동안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 일도 하고 친분도 쌓았다. 다행히 좋은 사람, 정 많은 사람, 속 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감사하게도 5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신 분들도 많이 계셨다. 이제 한 달 후면 그런 분들 중 두 분을 직접 만나게 된다. 나의 멘토이신 레인 할머니와 밀튼할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하러 오신다. 이제 내 달력의 카운트 다운은 시작 되었다. 나의 인생에서 그분들과 나눈 시간들은 유학 시절 동안 얻은 인생의 선물이었다. 이제 곧 한국에서 가지게 될 소중한 시간들이 기대가 된다.
그렇게 유쾌한 경험도 불쾌한 경험도 모두 감당하면서 나의 제2언어정체성(Second Language Ego)은 점점 성숙되어 가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미국 사람에 대한 반감도 호감도 없이 그저 나와 같은 하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각자의 고유한 특징이 있는 사회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것이 더 낫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언제든 소통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생각만 남을 뿐이다. 그 소통의 창을 언제든 열어두고 싶다. 소통의 수단이 될 영어를 언제든 사용할 마음을 가질 뿐이다.
참고문헌:
-Brown, H. D. (2007).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New York: Pearson Education Press.
-Guiora, A. Z., Acton, W. R., Erard, R., & Strickland Jr, F. W. (1980). The effects of benzodiazepine (valium) on permeability of language ego boundaries 1. Language Learning, 30(2), 351-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