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내 삶을 관통했던 철학은 다음과 같다.
우주의 목적을 우리가 알 수 없다. 우주의 목적은커녕, 하다 못해 탄소, 산소 등의 원소로 어떻게 후대를 이어가고자 하는 '생명'이 탄생했는지 조차 알 수 없음.
몇 시간 생존하고 번식하고 죽기를 반복하는 미생물의 삶을 보면 왜 존재하는지, 목적이 뭔지 의구심이 듦. 그렇게 해서 뭐 하려고? 이 의심은 모든 물질, 생명에 대해 유효함. 우주의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
길게 보면, 우리도 몇 분 살다 번식하고 죽고를 반복하는 미생물과 같음. 그리고 지금 우리 젊음이 영원한 것 같지만, 지금 중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그저 주마등 스치듯 아주 짧은 기억으로 남아 있음.
지금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일상이 되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엊그제의 나, 어제의 나, 내일의 내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죽는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그저 지금도 주마등의 일부일 뿐임.
그래서 난 삶을, 사실 난 죽기 바로 직전인데, 주마등을 내가 원하는 기억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받아들임.
그럼, 시점은 내가 죽을 때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내가 죽을 때 그 무언의 공허감으로부터 위로가 될까. 이 질문의 답이 내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임 (물론 우주의 목적을 알게 되면, 그 목적이 가치 있는 것이 될 것). 어떤 기억이 내가 죽을 때 위로가 될까..
난 죽을 때 고통보단, 날 기억하는 사람 없이 아예 '무'로 간다는 것이 두려움. 근데,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으면 위로가 될 것 같다 생각함. 예를 들면, 후대에도 이어지는 노래를 내거나,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거나, 논문을 내서 내 이름을 남기거나 등등.
희대의 살인마나 범죄자가 돼서 이름을 떨칠 수도 있겠지만, 좋든 싫든 내가 착하게 태어나고 착하게 살아서 그건 나랑 안 맞고, 난 그냥 연구원 돼서 논문 쓰면서 명예를 얻고 싶음.
논문의 형태로, "나 살다가 감" 남기다 죽는 느낌. 난 죽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죽을 때 위로가 될 거 같음.
- 2023년 2월의 필자
지금은 좀 바뀌었다. 예전엔 확실히 두려움이 있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면, 지금은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자 하는 태도.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지. 아무도 기억 못 한 채 죽을 수 있지. 삶의 밑바닥에 처박혀 아무 의미가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갑자기 눈이 실명되거나, 몸의 절반이 불타 절단할 수도 있겠지. 그건 고통일까. 고통이라면, 없애야 하나. 고통을 없앨 수도 있고, 그냥 지니고 있을 수도 있음. 그냥 지니고 있는 선택을 하고자 한다. 찝찝하겠지만, 그냥. 그럼 이렇게 질문할 것임. 너, 지금까지 이뤄놓은 거 많은데, 너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있잖아. 그거 다 강제로 포기당해야 하는데, 괜찮아?. 하는 질문에, '괜찮다'라고 답하고 싶음. 내가 모시고 살 내 업적, 내 명예, 돈 다 원하지 않음. 생각이 자유로워지는 데에 더 필요한 것 없을 정도로. 인생의 하향곡선 끝에 삶의 밑바닥에 도달하고자 함. 일종의 무소유 정신. 모든 사람이 날 배신하고 가진 것 없이 한없이 약해진 모습이더라도, '그럴 수 있지' 할 수 있게. 어떤 평행 우주 속의 내 모습이더라도, 나의 불변하는 가치가 빛이 나도록. 내 육신과 타인의 인정은 나를 바다에 가라앉힐 뿐. 내 가치는 우주 너머 진리를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