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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Mar 06. 2024

환승연애를 보면서 생각해 보는 나의 첫사랑

잊혀가면 그게 첫사랑이 맞아?

파이널 면접 후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저번 주말에는 환승연애 3을 몰아서 봤다. 이번 시즌에는 13년 연애하던 사람이, 시즌2에는 6년 연애를 하며 20대를 함께 보낸 커플이 나왔었는데 장기연애의 경험(5년/3년)이 있는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늘 눈물이 난다. 어떤 마음인지 너무 알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지나간 나의 첫사랑(이라고 스스로 부르는)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지, 왜 나는 나의 마음을 그때 제대로 다 털어버리지 못했을지 생각하고는 한다. 사랑했던 기간, 크기에 비해 헤어짐의 방법이 아쉬웠던 그에게 늘 나는 할 말이 차고도 넘쳤다.


그와 헤어진 지 6년이 되어간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고, 스스로 내적으로 많이 성장하게 되었다는 계기라고, 나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항상 말했던 헤어짐이었다. 그도 나도 너무 어렸고, 그와의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한 달 뒤에 직접 만나서 마무리짓자는 그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때는 나의 마음을 몰랐고, 그를 마주하면 무너져버릴 나를 알았기에. 늘 헤어짐의 방법이 마음에 남아서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안겨주었던 연애이자, 헤어짐이었고 그에게 받았던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기에 그와 했던 연애는 내게 정말 감사했고 서로에게 좋았던 연애로 기억한다.


나에게 안정적인 연애가 무엇인지 알려준 그였음에도 환승연애를 보며 헤어진 커플이 그들의 헤어짐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는 게 부러웠다. '나는 그때 이래서 힘들었고, 또 이때는 정말 고마웠어'와 같이 나의 속내를 툭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헤어짐을 가지고 싶었다. 특히 그는 나의 제대로 된 첫 남자친구이자, 힘들었던 고등학교 생활, 나의 20대 초반을 함께 했기에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사람이었으니. 헤어짐도 차근차근 곱씹어보면서 하자고 다짐했었는데, 모든 게 다 서툴렀다. 지금도 같은 20대이지만 20대 초반과 20대 후반은 천지 차이이니 그럴만하다고 느낀다.


나는 그를 나의 첫사랑이라고 부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지 않는다. 영원히 기억될 줄 알았던 그의 표정이나 습관, 말투, 걸음걸이 모든 게 다 생각나지 않는다. 첫사랑이라고 한다면 다 기억하고 추억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 그가 나에게 했던 따뜻한 말, 행동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냥 사랑을 많이 받았던 기억만 난다(솔직히 20살이 되고 크게 대판 싸웠던 이유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 느꼈던 감정보다도 어렴풋이 남은 '느낌', 그리고 내게 남자친구의 '기준'을 알려주었던 그, 중간에 겹치는 친구들이 있기에 종종 소식을 듣지만, 늘 잘됐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아마 내가 그보다도 그를 더 자주 기억하고 행복을 바랄 것 같지만, 그에게도 내가 기쁜 추억으로, 그때의 우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서로가 있다고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 덕분에 제대로 된 남자친구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고, 다정한 남자가 최고라는 것을 배웠으니. 그가 가고 새로 만났던 전 남자친구도, 지금의 남자친구도 그 누구보다 나를 뜨겁게 사랑했고, 사랑해주고 있으니 나는 그에게 고맙다.


지금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오래전 장기연애를 했던 그를 추억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인생에서는 중요했던 사람이기에 나는 언제까지고 그때 그와의 시간을, 그때의 나를 아낌없이 추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너도 누군가와 다시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의 기억을 통해 어렴풋이 나를 기억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헤어지고 만난 너의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생활하면서 순간순간 묻어 나오는 나를 경험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때 그게 나쁜 기억이 아니었길 바란다. 헤어지고 3년까지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이제는 그냥 잘 지내라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너의 행복을, 편안함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했던 사랑보다, 만났던 기간보다 아쉬웠던 헤어짐이었지만, 그런 나쁜 헤어짐이 있었기에 배신감에 이도 갈아보고, 잠깐이었지만 사랑했던 누군가를 이렇게도 미워해볼 수 있구나 느꼈다. 너의 아픔이 다 나의 아픔이었으면 했고,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었던.. 나를 버려가며 했던 연애를 했기에 지금 나는 나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네가 이 글을 언젠가 읽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난 그때의 우리의 시간을, 우리의 사랑을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테니까. 시간이 오래오래 흘러서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더라도 짧은 눈인사만으로도 너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때의 너의 모습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지만 시간에 지워져 가서 이젠 오로지 느낌으로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것마저도 내게 정말 소중하다. 그때의 서로를 추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는 없지만, 10대와 20대의 나를 기억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너는 영원히 모를지도 모르겠다. 네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아마 네가 나의 첫사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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