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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n 21. 2024

미국 사장님과 캐나다 상사와의 불편한 저녁 식사

매우 불편했던 3시간

6월 초였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상사를 만나 카페에서 일을 하는데, 마치 숨겨둔 무기를 꺼내는 것처럼 나의 상사는 내게 '데릭(사장님 중 한 명)이 자기 와이프랑 같이 토론토로 올 거야, 데릭 와이프가 토론토에서 하는 행사 책임자라 같이 오니까 오면 같이 저녁 먹자'.


겉으로는 'oh yeah, that would be cool'이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ㅈ됐다 스이발'만 여러 번 외쳤다. 그래도 사장님, 사장님 와이프 그리고 상사 나까지 하면 눈 딱 감고 한 번쯤 가는 건 괜찮다 생각했다. 그날은 유독 일을 길게 했다. 오피스가 있었다면 8-9시간 일은 그냥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했겠지만, 카페에서 9시간을 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카페에서 기나긴 9시간이 끝나고 내일 온라인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뒤로 하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상사는 다시 내게 전화를 했다.


'데릭도 와이프를 데려오고 나도 크레그(본인 남편, 여러 번 만남) 데려갈 건데 너도 남자친구 데려올래? 우리 다 커플인데 너만 혼자 오면 조금 불편해할 것 같아서. 남자친구한테 물어보고 알려줘 자리 예약해야 하니까! 크레그도 갈지 안 갈지 모르는데, 내가 가게 만들 거니까 너도 남자친구한테 물어봐!'


하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늘 내 남자친구를 궁금해하는 건 알았지만, '너 남자친구랑 만난 지 1년도 더 된 것 같은데 내가 이름도 모르고 한 번도 못 만나봤네'라는 말을 덧붙이며 노골적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본인은 또 하프 필리피노라면서 둘이 더 잘 통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마무리로 통화는 끝이 났다. 진짜 싫은데 별 수 있나. 나는 혼자 비원어민이고 캐나다 토론토에 직원이 나와 상사 둘인데 내가 안 나가는 건 말도 안 되고, 남자친구한테 얘기하니 남자친구도 같은 마음이었다. 자신이 가지 않으면 내가 혼자 원어민들 사이에서 버벅거릴 걸 생각하니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처음에는 생각만 해도 떨리고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혼자 주눅 들어 있으면 어떠나 고민했는데, 이상하게 그날이 다가올수록 그냥 체념하듯 떨지도 않고 긴장도 되지 않았다. 마침 레스토랑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으로 가까웠고, 문제는 저녁 식사를 9시 반에 예약을 했다는 점 정도? 나는 아예 술을 못 마시고 남자친구는 술을 멀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아 더 일찍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녁 식사는 12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사장님은 이미 작년에 한 번 마주쳤었고, 그녀의 와이프도 마찬가지어서 생각보다 편했다. 상사의 남편은 언제나 사람이 좋고 나이스해서 불편한 건 전혀 없었지만.. 역시나 언제나 내 상사가 문제다. 식사가 끝나고 같은 원어민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어떤지 남자친구에게 물었고, 남자친구는 자기였다면 내 상사와 같은 타입의 사람과 일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거라고, 내가 자랑스럽다고까지 했다. 이렇게 누군가 알아주기라도 하니 내가 이상하고 부족한 게 아니라 그녀가 조금.. 이상한... 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히려 사장님이랑 같은 오피스에서 일하는 게 훨씬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래도 한 번 만나서 식사하고 시간을 보냈다고 전보다는 더 마음이 편해졌기에 미국에 있는 다른 팀원들도 만나서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한국어를 말할 때만큼 편하게 내 성격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주 어색하고 강낭콩 같은 나..


사장님이 8월에 다시 토론토에 온다고 했는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저녁 식사라 그때 다시 내가 만나야 할지 의문이다. 다시 안 만나고 싶은데.. 특히 내 상사와 함께라면? 아무튼 너무 싫었지만 하고 보니 어떻게 하게 되었다는.. 그런 교훈을 주었던 저녁 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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