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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와 리테일 세일즈 그 사이 어딘가

캐나다에서 투잡 하기

by Sean

캐나다에서는 투잡 혹은 쓰리잡까지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버를 타고 다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레귤러 잡이 있는 사람이 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우버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주말에만 잠깐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나는 이런 게 처음에 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캐나다에 살고 있는 지금, 그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 높은 물가 때문이겠지. 더군다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 혼자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더 힘들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짐작한다.


나는 지난 7월부터 얼마 전까지 투잡을 해왔다. 리테일에서 세일즈 알바로 일했었고, 또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패션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무급)로 일을 동시에 했었다. 지금은 무급이 아니지만 무급이 아닐 때도 계속 일을 같이 해나기도 했다.


여기는 이런 리테일에서 알바 구하는 것조차도 인맥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때 닥치는 대로 일을 구하고 있던 시기라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다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올버즈'라는 회사를 보게 되는데, 나는 이미 알고 있던 브랜드였다. 한국 대학에서 공부할 때부터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상태였고, 그에 관한 과제를 하면서 올버즈라는 신발 회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토론토에 생기는 매장이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생기는 매장이라고 했다.


처음 오픈 멤버로 들어가면 사람도 많이 뽑을 거고, 그러면 나도 인맥 없이 스스로 일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역시나 바로바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그래, 여긴 캐나 다지. 잊어버리고 있자, 하는 찰나에 (약 한 달 정도 뒤였던 걸로 기억) 연락이 왔다. 1차 인터뷰를 보자는 면접이었다. 비디오 콜로 잡혔었고, 이상하게 시카고에 있는 직원이랑 면접을 보게 된다고 했다. 인원은 최대 3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했고, 인터뷰어는 한 명이라고 했다. 비디오 콜로 면접을 보면 좋은 것은, 약간의 반칙을 쓸 수 있다는 거다.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을 거라고 했지만, 그 한 명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나 홀로 1:1 면접을 봤었다(나는 1:1 면접을 가장 선호한다, 대부분 그렇듯이). 1차 면접 결과를 받는데도 1주일이 걸렸고, 2차 면접은 토론토 지사의 매니저들과 면접을 볼 거라고 통보받고 2차 면접을 기다렸다.


아니 무슨 리테일 세일즈 면접 보는데도 이렇게 다양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오픈 멤버를 뽑는 거니까 본인들도 신중해야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2차 면접을 봤다. 한 명의 헤드 매니저와 한 명의 플로어 리더, 이렇게 두 명이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결과는 일주일 뒤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면접이 끝나고 2시간 뒤에 플로어 리더한테 전화가 와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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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욕데일 올버즈 매장


나는 영어를 내가 원하는 만큼 구사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일즈 일을 하면서도 답답했던 건 사실이고. 사실 외국에 산다고, 영어권 국가에 산다고 영어를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다들 상상으로는 외국인과 친구가 되어서 멋들어지게 영어를 구사하는 나를 상상하지만, 사실 영어가 저절로 느는 것도 아니다. 특히 나처럼 모국어가 완전히 굳어진 사람이 외국에 와서 많이 듣기만 한다고 영어가 느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듣기 실력이 늘 뿐, 내가 뱉어내지 않고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영어는 느는 일이 없다. 뱉어내기만 하면 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인풋이 없으면 뱉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아무튼, 올버즈도 미국 회사이다 보니 미국 최저 시급에 맞춰서 줬었는데, 캐나다달러와 환율 차이가 있어서 캐나다 달러로는 시급 $22 받았었다. 여기 최저가 $16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6불 정도를 더 받는 거니, 당연히 일할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18~23살 정도였고, 여기 나이로 26살인 나는 리더를 제외하고는 가장 나이가 많았다(하지만 외모로는 내가 제일 베이비 한국인 최고다. 외국 애들 나이는 가늠이 안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올버즈 신발을 좋아한다. 특히 대셔 2라고 러닝화를 좋아하는데, 우리는 처음 일할 때 두 켤레를 공짜로 받았고, 쿼터마다 신발 하나씩을 준다. 아, 그리고 직원은 50% 할인해 준다. 생분해가 가능한 재료(울, 사탕수수, 유칼립투스)로 만들어져서 환경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거에는 이견이 없지만, 가격은 살짝 말이 안 되는 느낌?


7월과 8월은 여기 와서 내가 가장 바쁘게 살았던 때다. 주 4일은 세일즈로 일했고, 주 3일은 패션 디자이너 인턴을 했다. 주 7일을 일하고 나니 몸도 지치고 마음도 너무 지쳤다. 진짜 투잡 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한 군데서 무급으로 일하니 한 군데에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일하는 동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재밌고 좋았다. 하지만 체계가 없는 매니지먼트, 신생 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의사소통 문제(말도 없이 스케줄 빼는 일) 등이 점점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처음과 같은 열정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계약서 상으로는 일주엘에 4시간~29시간을 받아야 했지만, 처음에는 20시간, 17시간씩 받던 스케줄이 어느새 일주일에 하루, 4시간으로 줄어있었다. 교통비가 더 들겠다 싶기도 하고, 조금 더 패션 디자인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내 커리어를 점점 더 쌓아나가고 싶었기에 약 일주일 전에 관두기로 결정했다.


내 힘으로 일을 구하고,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 일해보니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영어도 많이 부족하고 생각보다 낯짝이 두껍지 않다는 사실, 나는 외향적이지만 내향적인 성향도 생각한 것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어려울 것만 같았던 일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는 것,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 오로지 내 생각뿐이었다는 것.


언제나 부업, 투잡 쓰리잡도 생각하지만,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내가 튼튼하지 않으면 하느니만 못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 지난 투잡 이야기.


3976f1e3-eaaa-40e4-ba4e-9ff7437c522c.JPG 올버즈 오픈 멤버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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