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소화하기엔 3개월은 짧다
그는 손이 참 예뻤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손이 예쁜 남자를 좋아했다. 내가 손이 예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는 키도 컸다. 한국에서 전철을 함께 타면 다른 사람이 작아 보일 정도로 덩치도 꽤 있는 편이었다. 평소에 덩치 큰 남자를 좋아했던 나에게 그는 완벽했다.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았다. 5살 이후로 쭉 한 동네에서 자랐던 나와는 다르게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가며 살았던 그의 배경이 참 멋져 보였다. 그는 그게 싫었다고 했다. 언어가 달라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그는 중국에서의 삶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그가 싫어하는 그의 배경까지도 사랑했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룸메이트와 사는 것을 격하게 반대했던 아빠가 전체 렌트를 할 수 있게 지원해 주셨다. 이때만 해도 평균보다 훨씬 저렴하게 집이 나와있어서 한동안 조금 싼(그렇지만 절대 싸지 않은) 가격으로 지낼 수 있었다. 이때 Y가 나를 대신해서 내가 고른 집을 보러 다녀 주었고, 캐나다에 통장이 없는 나를 위해서 2달치 보증금도 미리 내주었다. 내가 구매한 가구까지 모두 다 받아서 집에 옮겨주었고, 고정된 샤워 헤드를 미리 바꿔놓았고, 와이파이 연결은 물론, 집 청소까지 모두 다 해놓은 상태였다.
2021년 4월 1일. 출국날짜가 정해졌다. 학교 프로그램에서 하는 인턴십을 하기 위해서 4월에 욕심내서 가기로 했고, 출국날짜가 정해진 후로는 새벽에는 학교 수업, 오전-오후에는 친구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니 친한 친구들은 여러 번 더 만나고, 코로나로 오래까지 함께하지 못하면 자취방이라도 가서 수다를 더 떨기도 했다. 내가 여기 온다고 파티까지 열어준 친구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정말 고맙다.
그 당시 캐나다에서는 외국에서 입국할 때 공항에서 받은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정부 지정 호텔에서 3일 동안 격리해야 했다. 토론토까지 직항이 없었기에 밴쿠버에서 3일을 격리한 후, 다시 국내선을 타고 토론토로 이동하는 여정을 거쳐야 했다. 대부분의 짐은 출국 날짜 2달 전 바로 싸서 배로 보냈고, 나는 당장 입어야 할 옷들을 챙겨서 캐리어에 넣어왔다. 시차적응에 정말 실패한 채 3일을 보내고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나는 토론토에서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갈 예정이었지만, 이때도 어김없이 Y가 공항으로 나와주었다. 반년만에 다시 만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의 모든 짐을 다 받아서 그의 차에 실어주고, 그렇게 내가 살 곳에 짐을 다 넣어주었다. 시차적응을 하지 못한 채 4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나는 기진맥진했고, 토론토로 오는 비행기에서 아이가 계속 우는 통에 잠 한숨 자지 못한 나는 너무 배고프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두 달 전에 배로 보낸 짐은 아직까지 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가 임시로 가져다 놓은 이불과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가 깨우더니 라면을 끓여서 내게 줬다. 그리고 그는 내가 먹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다정했던 사람이었다. 나와의 관계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고, 아낌없이 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에게 고맙다. 여자친구이기 때문에 내게 해주었던 것들 또한 고맙지만, 평생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나의 꿈을 옆에서 함께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여자친구이기 전에 한 사람의 꿈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면서 보여주었던 그 응원의 메시지가, 첫 시작을 함께 해주었다는 그 사실이 정말 고맙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그여서, Y였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Y였어서,라는 말이 오늘은 조금 더 슬프다.
3년을 소화하기엔 3개월이라는 시간은 조금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