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남자, 감성적인 여자
7일 간 격리가 끝나고 그와 함께 나가기로 했다. 4월의 토론토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쌀쌀하고 추웠지만, 2년 만에 다시 방문하는 토론토는 낯설기도 하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식당에서 먹는 게 허용이 되지 않았던 터라 우리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근처 공원에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일상을 보냈다. 그가 아는 맛집, 내가 가보고 싶은 카페나 식당을 다니면서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우리는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가고 싶은 카페가 생기면 항상 함께 가고는 했다. 커피 로스터리가 있으면 드라이브도 할 겸 차를 타고 가서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근처에 산책할 곳이 있으면 둘이서 손을 꼭 잡고 다녔다. 2년 전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을 부지런하게 데리고 다녔고, 은행이며 세금 신고며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을 척척 도와주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토론토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와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거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적응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는 건 틀림없다. 그가 있었기에 조금 순탄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잘 모르는 것들은 알려주고, 우리가 좋아하는 힙합을 들으며 여기저기 드라이브하는 시간을 가졌다. 점점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길어질수록 그와의 사랑이 깊어졌지만, 모순적으로 그만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그는 참으로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글만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이고 궁금한 것투성이다. 말이나 글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부담이 없고, 나에겐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그런 점들이 우리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래도 대화로 잘 풀어왔으니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장거리 연애를 할 때는 몰랐던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잘되던 연락은 내가 캐나다에 오면서부터 잘되지 않았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연락하는 것을 매우 귀찮아했다. 아무리 내가 좋아도 우리 집에서 이틀 이상은 자고 가지 않았다. 하루하고 반나절이 그가 나와 보내는 가장 긴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나를 만나면 충분하다고 했고, 나도 내가 그런 줄 알았다. 감정적인 말로는 그를 설득할 수 없었고, 효율적인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혼자 살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가 거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갈등이 생기면 날아오는 차가운 말들에 상처받기도 했지만, 나도 어느덧 그와 같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했다. 그를 사랑하면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이 좋았고, 외부의 말에 흔들리던 내가 그로 인해 이제야 차차 중심을 잡아갔다.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Y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면 항상 무너졌고, 항상 비슷한 우울감에 무너졌다. 하지만 그는 그 우울감의 뿌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우울의 원인을 함께 찾아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는 평소에는 자기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무시한 채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나는 들판에 잡초 같은 사람이고, 그는 거대한 고목나무 같았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뿌리가 뽑히지는 않는 사람인 반면, 그는 센 바람이 불면 뿌리가 뽑혀나가거나 바로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살아왔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왔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내가 학생이었을 때, 그가 바쁘지 않았을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줄 이때까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