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마지막 미국 이별 여행
토론토 피어슨 공항으로 가는 내내 많이 울었다. 그도 헤어지는 쪽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삶에 너무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내가 먼저 이별을 말했는데, 후회했다. 그냥 같이 잘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이 고비를 넘겨야 진짜 큰 사랑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와 계속 사랑하는 게 상상이 안갔다. 이런 생각들을 가득 안고 1년 넘게 만나지 못한 친구를 보러 갔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여행이었는데,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 이별을 말한 우리였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을 잡고 걸었고, 여보, 베이비와 같은 말로 서로를 불렀다. 자기 전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정한 말을 하는 일은 없었지만, 서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그가 노력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더 슬퍼할걸 알았으니까. 내가 울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내가 울면 마음이 아프니까, 그냥 마지막으로 좋은 기억으로 여행하면 좋겠다고.
솔직히 미국에서 내 마음에 집중하느라 즐기고 온 건 내 친구 결혼식뿐이었다. 물론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그와 계속 대화하고 싶었지만, 감정적인 이야기는 질색하는 그였기에 그냥 내 말을 들어줬다. 그의 눈에서 피곤함을 읽었지만. 나는 충분히 화냈고 슬퍼했고 울었다. 감정에 북받쳐 악을 쓰기도 하며 우리의 이별을 마음껏 아파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그가 없는 토론토는 상상하기 힘들어서 무서웠다. 나 홀로 헤쳐나가고 살아갈 것이 너무 두려웠다. 이상했다, 이별은 내가 먼저 말했는데.
나중에 함께 서부 로드트립을 하기로 했는데 이별 여행이 될 줄이야.
일정상 그가 먼저 토론토로 돌아왔고, 나는 친구 집에 머물러서 이틀을 더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연락의 횟수는 줄이자고 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마음이 너무 지쳐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반, 친구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그와의 헤어짐은 생각보다 담백했다. 그때는 토론토에 돌아와서 그를 만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가볍게 서로 안아주고 토론토에서 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그가 공항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너무 이른 아침 시간이었기에 그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내가 처음 캐나다로 오던 날이었더라면 어느 시간이던지 왔을 그였을 텐데.
그렇게 우리는 간간히 연락만 주고받았다. 나는 그를 기다렸다. 그가 괜찮아질 때까지. 심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그가 드디어 만나자고 했다.
"이번주 토요일 시간돼?"
"응 그럼,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뭔데?"
"혹시 헤어지러 오는 거야?"
"응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러는 게 낫겠지?"
"응 아무래도"
무급으로 버티던 회사에서 나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한 날, 나는 그를 잃었다. 내 일자리 제안을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는 남자친구가 아니다. 마음이 묘했다. 우주는 내가 모든 걸 다 잃게 만들지는 않는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이 상황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웃겼다.
그가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지내고 가는 그 덕분에 그의 짐은 별로 없었지만, 미국 여행을 가면서 빌려간 내 캐리어를 주겠다고 했다. 잔인하다, 여기 올 때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짐을 넣어주던 그였는데, 이제는 나보고 떠나는 모습을 보라고 한다. 남겨질 나는 생각도 안 해주고. 그래서 내가 내려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만나기로 했지만, 그는 내가 쓰고 있는 그의 계정을 다 로그아웃해 주길 바랐다. 나는 내 넷플릭스를 쓰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마존 프라임, 스타벅스와 같은 작은 하나라도 연결고리를 만들어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말이 달라졌다. 헤어지더라도 나와 간간히 연락하는 사이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던 그가, 저런 작은 것 하나라도 끊어내고 싶어 하다니. 슬펐다. 그냥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이별을 말하는데도 서로의 애칭을 부르고 있었다. 더 슬펐다. 우리는 서로 아직 사랑하고 있었다. 그냥 이 관계를 지속할 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를 가장 지치게 했던 그의 직업은 포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족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해도 그가 얼마나 그의 가족을 생각하는지 알았기에 가족을 포기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다니는 교회, 친구들, 귀찮다고 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포기하기 쉬운 게 나였을 거다. 그래서 나를 포기한 거다. 나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었고.
감정이 격해진 우리는 나중에 보자고 했다. 나를 어떻게 해서든 끊어내고 싶어하는 그에게 서운했다. 다음 날 연락해서 지금 당장은 보기 어려울 것 같으니 내 마음이 좀 나아지고 6~7개월 뒤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이게 우리의 끝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 서로를 만나지 못했고, 나는 끊임없이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고 있다. 다정한 사람이고, 며칠 뒤면 함께 놀러 간다. 헤어진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이런 과정이 낯설긴 하지만 싫진 않다. 그럼에도 종종 문득 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Y가 그립다기보다는 그냥 그때 함께 시간을 보냈던 우리가 그립다. 3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싶다. 좋은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종종 그의 꿈을 꾸는 걸 보면. 내가 그에게 연락을 할지 말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그래도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후회 없을 만큼, 미련 없을 만큼 정말 많이 사랑했고, 처음으로 연애하면서 나 자신을 버리지 않고 사랑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인간으로서 쭉 사랑할 거고 응원할 거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언젠가 그를 만나야만 이 마음의 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더 우리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찬찬히 우리의 시간을 음미하고, 이렇게 건강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깊은 감사함이 든다. 쓰다가 콧잔등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눈이 몇 번 뜨거워지기도 했지만, 이게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한 나만의 애도 방법이라고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애틋함이 사라질까 두렵지만 언제나 행복해야 해, 늘 응원할게. 이젠 서서히 나의 그리움에서도 벗어나줘, 나도 좋은 사람이 다시 생길 것 같으니까! 사랑했어, 그리고 언제나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