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 거절, 잘한 선택이었을까 객기었을까

일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

by Sean

생각할 시간을 더 달라고 하자마자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 'No, you should tell me right now, we have a few applicants that I can reach out to. So, if you say no, please tell me right now.'


이렇게 나를 밀어붙이는 곳은 없었던 터라 매우 당황했다. 지금 이 자리를 수락하게 되면 당장 이틀 뒤에 출근을 해야 했고, 오퍼 레터를 작성할 때 필요한 신분증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다른 오퍼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고 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밀어붙였다. 우선은 이틀 뒤 출근은 어려울 것 같으니, 다음 주 월요일 출근으로 합의를 보고 내 신분증을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그와 전화를 끊고 난 후 그만큼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거겠지, 그만큼 내가 능력이 있다는 거겠지, 와 같은 생각이 들면서 나를 위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위로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왜 나를 지금 위로하고 있지? 오퍼 제안을 받으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맞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포지션이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였다. 그래서 내가 싫은 점과 좋은 점을 쭉 나열하기 시작했다.


<싫은 점>

1. 체계가 너무 없음

2. 아무런 베네핏(보험 포함)이 없음

3.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민자

4. 성격 급한 사장

5. 종종 너무 타이트한 데드라인(길면 5일)

6. 부서마다 서로 소리 지르고 싸우는 일 다반사

7. 만족스럽지 않은 연봉

8. 음침한 사무실 분위기

9. 집 앞(종종 해결 못하는 일 집 가까우니까 가서 하라고 할 듯)

10. 가족 회사(극혐 극혐!)


<좋은 점>

1. 안정적(정부가 고객, 곧 80주년)

2. 집 앞(걸어서 5분, 출근시간 단축, 교통비 제로)

3. 타이틀(기술적인 부분들 배우기 좋을 듯)

IMG_4282.JPG 실제로 써보면서 고민한 흔적..

아무리 생각해도 싫은 점이 훨씬 많았고, 거절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내가 너무 객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친구와 남자친구에게 상의했다. 몇 친구는 구직 시장이 너무 어려우니 그냥 경험 삼아 가라고 했고, 남자친구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이미 경험은 있으니 굳이 네가 좋지 않은 회사를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건 경험 쌓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을 죽이는 거라고 이야기해 줬다.


사장님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원하는 만큼의 연봉 협상도 했던 상황이었고, 집 앞이라 교통비가 들 일도 없고, 타이틀 또한 매우 괜찮았기 때문에. 트렌드를 따라가는 곳은 아니지만, 기술적인 부분들을 배울 수 있고, 직접 재봉을 하는 사람들, 원단 커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배울 점은 많아 보였지만, 다들 '이민자만 있는 곳'이라는 점을 매우 안 좋게 생각했다.


남자친구 또한 '이민자'만' 있는 곳과 사장의 태도로 보았을 때(푸시하는 것과 종종 마음이 급해지면 소리를 지른다고 본인이 이야기해 줬다.) 거기는 매우 red flag'라는 대답을 들었고, 연봉이 낮더라도 이름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매우 고심한 끝에 미안하다고 다른 곳에서 오퍼가 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하며 오퍼 거절 메일을 보냈다. 그 뒤로 그에게는 어떠한 답장도 오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내 인생 첫 오퍼 거절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솔직히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이틀 뒤, 대기업에서 떨어졌다는 메일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갈걸 그랬나..' 하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는 걸 보니 오퍼 거절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연말이기 때문에 원래도 안 오던 연락이 더 오지 않는 걸 보면서 조급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미래는, 나의 구직 일기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이 선택이 나의 객기가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선택에 맞고 틀리고는 없다고 하지만, 이게 정답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캐나다에서 외국인으로서 그런 열악한 환경을 모두 다 짊어지고 일을 하면서 '경험'이라는 포장으로 내 시간을 쏟았어야 했을지, 외국인임에도 '내 자리는 내가 만든다'라는 마인드로 거절을 한 것이 맞았을지.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다.


여전히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후회가 없으니 잘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게 마지막 기회는 아니었겠지만, '연말이기 때문에 인내심을 더 가져야 하는 것'이 나의 현주소이고, 어쩌면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인 것 같기도 하다. 불안하다. 경제는 더욱 안 좋아지고 있고 경쟁률은 치솟고 있고, 내가 갈 자리는 어딘가 존재하겠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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