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을 품은 부정

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by 효진씨

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일에서 부정적인 면을 찾아 비아냥 거리는 시니컬의 대명사였다. 나는 완벽해 보이는 기쁨에서도 어떻게든 슬픔의 흠을 찾아 들여다 보는 사람이다. 지나치게 슬픈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나는 특별한 인생에는 거대한 시련과 슬픔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김치로 뺨을 맞은 상태로 끝나던 일일 연속극처럼 오늘은 내일의 반전을 남기는 날들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내 주변에는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는 온화한 사람들이 많았다. "너희들의 심장은 뛰고있니?" 라며 반문하는 나는 그들 사이에서 너어무 기쁘고 너어무 슬픈 사람이었다.


그런 나도 어찌어찌 결혼을 하고 저찌저찌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태어나면서부터 비아냥거리는 아이를 낳을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응애"가 아니라 "쳇"하고 우는 아기를 낳게 되면 어쩌나. 엄마를 비아냥거리는 아이를 키울 자신은 없는데. 무슨 방법이라도 써야했다. 기도로 충분할까? 이런 중대한 일을 운에 맞겨 버려도 될까?


어째서 전문가란 사람들이 똑똑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방법은 연구하고 긍정적인 아이를 낳아 키우는 방법은 연구하지 않았지? 내 뱃 속에서 어둠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야비하게 웃는 아기를 구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녀석이 부정적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역시 적당한 이름이 필요하겠다. 부정적인 기운이 찾아들지 않는 이름. 뭐가 좋을까? 달콤하고 포근한 이름이 좋을까? 아니야. 그런 은유적인 이름들로는 어둠을 끊을 수 없다. 더 직관적이고 확실한 이름. 너는 이런 사람이 되거라 하는 선포같은 것이 좋겠다.


'긍정이'. 친구들은 궁뎅이처럼 들린다고 했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매 순간 '긍정아' 라고 속으로 말을 걸때마다 내 안에서 긍정이 퍼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는 10개월간 긍정을 품은 부정이었다.


출산을 하고 몸 밖으로 나온 긍정이는 다행히도 '엥'하고 우는 아이였다. 그러면 긍정을 낳아버린 부정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은 손에 닿는 곳에 긍정이가 있다. 한번씩 찾아오는 슬픔과 부정의 기운이 나를 사로잡아 또아리를 틀면 나는 우리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기쁨과 긍정의 기운을 흘리고 있는 녀석을 불러 풀어달라고 할 때까지 껴안고 냄새를 맡는다. 그러면 내 몸은 10개월간 품었던 그 긍정의 감정을 기억하고 다시 느긋해진다.


아기를 낳고 달라진 점이라면 슬플 일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다. 이런 것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나이를 먹는 일은 괜찮은 일이다. 대신 슬픔이 세분화 된다. 이제는 슬프기보다 서운하고 슬프기보다 노엽다. 원인 불명의 감정보다 다스리는 일도 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밖으로 빠져나와 돌아다니는 긍정을 껴안고 충전을 할 수 있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는 수학 문제집을 채점하다 소리를 지르고 긍정의 궁뎅이를 만지며 기뻐하는 어제 밤이 떠올랐다. 아. '일희일비'의 시기가 지나가면 '일희일노'의 시기가 오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기록이 사라지면 기억은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