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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Aug 27. 2023

독1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내 왼쪽 팔이 벌에 쏘이듯, 길을 걸을 땐 어디선가 긴 촉의 화살이라도 날아올 듯 위기감을 느끼고는 한다. 스스로 날카로워지지 못할 때가 나는 가장 두렵다. 그럴 때면 내 안의 동독 비밀 경찰이 움직인다. 잠도 재우지 않고 심문해 미치도록 만든다. 의자에서 떼어져 있던 등은 곧 기대고 잠깐 잠이 든다. 다시 깨운다.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들어 눈을 뜬다.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다. 묵은지와 돼지 목살이 잘리고 썰리지 않은 채로 뚝배기 속에 있다. 조각내지 않은 생김과 참기름을 떨어뜨린 간장의 조합, 연금조림, 오뎅 반찬과 보리차. 그래도 밥은 먹게 한다. 꽤 인간적인 고문에 시달린다. 이곳은 꼭 동쪽의 베를린만 같다.


Das Leben der Anderen, 2006


처음 그를 만났을 땐 영 불편했지만 적응이 되었다. 나는 둘로 나뉘어 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서쪽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고는 한다. 전포동에서 커피를 마셨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작은 건물과 투명한 유리창들, 그것에 위로를 얻는다. 불빛에 유리창에 비친 얼굴,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동쪽의 그는 지금 어디에..


술 마신 사람들, 술 먹은 사람들, 알코올에 푹 절여진 인간들. 나는 그 분위기가 좋았을 뿐이다. 그렇게 비틀거리는 밤거리가 마음에 들어 일찍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입 안이 헐어 그러지도 못해 서성인다. 그럼 커피는 왜 마신 거지?


내 삶이 다른 이의 삶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었나. 끝내 그들을 통해 깨우치게 되듯, 내 하루 그 소중함을. 왜 난 다른 시선 다른 목소리에 둘러싸였었던 건가. 그를 만나기로 했다. 장벽 근처 어딘가에서 담 위로 손을 뻗기로 했다. 여전히 얼굴은 마주할 수 없는 채 보기로 했다. 그 높은 회색의 벽을.


모든 일은 오늘 저녁 독일에서 온 맥주를 마시겠다며 집에서 나와 꾸며진 이야기임을. 'Das Leben der Anderen'이 타인의 삶보다 낫지 않은가. 통일이 소원이라던 그 아이들의 꿈을... 그 지어진 노랫말과 같은 이야기를 믿지 못해 나는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경계선을 찾지 못해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곳 어딘가에 낯선 모습의 여자가 있었을 뿐. 곧 운명이라며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 연극과도 같은 이야기를 믿지 못해 나는.


그가 어디에 있든 나는 그를 찾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고 전화한다. 다시 만나기로 하고 끊는다. 그 선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고 끊어지지 않아 모두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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