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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Nov 19. 2023

'Corcovado'


겨울, 세 번째 소설을 다 써갈 때쯤 마련한 소중한 일자리. 비록 3개월 계약직이었지만 따뜻함을 품었다. 편의점 창고와 냉장고를 오가며 음료수 박스와 치열히도 다퉜고 햄스트링 부상도 입었다. 지금껏 보고 들으며, 또 느끼며 쌓아온 물리학적 지식으로 이틀만에 가뿐히 풀고 나왔지만 두려웠다. 내일 출근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재계약을 바랐고 직영점 관리자도 추진했다 하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기뻤다. 많은 나이가 되어 비로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분이었고 한 명 한 명 작별 인사를 나눌 때는 눈물도 날 듯했다. 미처 보지 못하고 온 정 든 얼굴들도 있다. 다시 만나면 부끄러울 듯하다. 서로 필요에 의해 한 곳에 모인 사람들. 그러나 지우지 못할 인연들.

봄, 새로운 일자리에서 혹독한 적응기를 거친다. 실수를 반복하고 날카로운 기분들이 부딪히며 힘도 들었지만 사람들은 서로 잘 지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자신의 하루가 달린 일을 하며 지친 모습들은 오늘이 끝날 것에 대한 안도로 끝이 난다. 그 걸음은 분명 힘찼으며. 

좋은 신발과 옷을 사며 새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여름이 오면, 여름이 지나면, 또 가을이 오고, 그래서 겨울이 오면 나는 더 큰 따뜻함을 품으리라.

여름, 내 엄마가 전한 듣기 싫은 소식. 나는 듣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 곧 가을이 올 것을 아는데 느린 시간이 흐른다. 새벽녘 안개가 끼는 산봉우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안개는 곧 걷힌다.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가면 싸운다. 다음 소설을 써야 한다.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의 스노우맨을 보고 언젠가 꼭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라 다짐하며 몇 개의 조각을 만들었는데, 서랍 속에 넣어둔 그것들을 다시 꺼내어 볼 때 과연 이것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막막함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 가을.

겨울로부터 여름으로까지 나는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을 지나왔음을. 그러나 다시 현실에 도착하는 기분이 들 때 새로운 시간으로 도망칠 궁리를 한다. 거창한 포부로 이루어졌을 리 없는 계획은 새로운 도주로를 찾는다. 그 길뿐이다. 나는 글을 써야 하고 야나가와 히사시를 만들고 조립해야만 한다. 그 옆에는 히토미를 세우며, 그렇게 홋카이도의 겨울에 있으면서..

11월, 느닷없는 눈이 내렸다. 냉동 창고에 들어가 본 올해 첫눈. 곧 바깥에서 거센 눈발이 날리지만 이미 보았던 것이다. 왜 그토록 굴곡진 감정이었을까 지난 1년을 돌아본다. 

회사 회식 자리에 앉아 저마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술이나 따르고 마신다. 아침, 속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럽다. 나라 레앙의 꼬르꼬바두를 들으며...

그 노래는 두 얼굴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며 들었던 노래다. 아니, 몇 년 전부터 반복해서 들어온 노래 중에 하나였다. 도대체 뭐가 미련이고 후회로 가득찼나.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끝이 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올 테니. 인생을 그려라! 왜 내게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걸까.


https://youtu.be/t4S7tATqL58?si=Lv1SCABq67kzE7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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