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 말했다. 그 시선을 회피하듯 난 고개 돌렸고 순간 그 여자 표정을 살피려 했던 건지도. 김일성과 나, 그리고 그 여자는 삼각형을 만들며 앉아 있었다.
색이 있는 카펫이 검게 보일 정도로 조명이 어두웠으며, 그 여자 재킷 안에 입고 있던 옷조차 그 색깔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음을.
왼팔을 목 근처에 두며 그걸 대부분 가려놓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턱을 만지던 손은 가끔 술잔을 찾고, 난 와인이 든 그 잔을 물음표 쥔 듯 놓을 수 없었으며 그 여자 역시 내 시선을 느낀 듯이.
21시쯤이었나, 미술감독 고영희와 셋이 백사장을 찾았을 때난 그 여자 외투안 셔츠 색깔이 녹색이라는 걸 알았다.
둥근 건물 안 그 여자는 하나의 물체 앞에 서고 그 조형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전선으로 연결된 정신으로 이루어진 인간 몸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작가의 머릿속 생각을 전한다. 마치 홀로그래피처럼 표현된 그 모습은 그야말로 홀로인 인간 모습 그대로였는데.
그때 그 여자는 내게 말했다.
"피곤하세요?”
난 조금 그랬다. 그럼에도 서 있으며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술과 담배, 또는 커피가 없으면 떠는 손과 서 있는 것조차 불안한 두 다리. 그렇기에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다. 그게 현대 사회의 인간 모습이라 말했다.
그림 속에 있던 여자, 그러나 이젠 그 그림 속에도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
그날 그 여자를 다시 본 것이었다. 난 그 여자 말에 이끌리는 걸 알았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임을. 모두 자신을 그런 신세라 여기며 살지 않을까.
부산에서 본 김수현을 다시 만나러 서울에 갔을 때 난 그가 주최한 조용욱 전을 관람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을 가진 건 다시 그 언덕 많고 계단 많은 도시였다. 그날 우린 달이 훤히 보이는 길을 걸어 올랐는데, 오르는 동안 그곳 길가에 몇 개의 갤러리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을의 밤은 차갑기 마련이지만 새로운 온기를 느껴 따뜻했다. 오르막을 올라 그랬던 건지도.
나무들은 흔들리고 있었으며 검게 칠해진 길 위로 차들이 앞과 뒤로 기운 채 지나다녔다. 다시 내려와야 했음에도 우린 언덕 끝까지 올랐음을.
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보는 게 좋다고, 영화 속 대사 한 문장을 짓듯 난 말했다. 그랬던 듯하다. 순간 어디선가 킁킁대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끝에서 마주친, 주인과 밤 산책을 하던 보르조이 한 마리는 다가와 그 여자 냄새를 맡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때 손을 잡고 선 두 남녀의 모습이 지나가는 자동차 창문에 비친다. 이상한 자동차들. 아니, 그리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내가 이상할 뿐이었음을. 그럴수록 또렷해지는 건 오직 그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누군지를 알 것 같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지나고 난 뒤에는 모두 안다. 내 아내가 이스라엘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는 건 오직 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뿐임을. 눈이 감겼고, 어디선가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꼈으며, 꿈에서 깼을 땐 날이 밝아 아침이라는 걸 안다. 누굴 생각하다 보면 가끔 날 잃는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내게 편지를 썼다. 자신의 목소리를 영상 속에 남기기 시작했다. 거리 풍경과 사람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그 여자 목소리를 들으니 그 순간들이 떠오를 것만 같이.
가끔 아들의 모습도 비췄고, 아이는 폴짝폴짝 뛰기까지 한다. 또 소리지른다. 그 여자 목소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듯했으며 그럴수록 아이는 자랐던 걸.
아들은 문장 끝맺는 법을 알기 시작했고 그건 점점 한국인의 언어가 됐다. 다시 볼 땐 놀랄까, 그것들을 모두 누가 가르쳐 준 것이었는지 하며 말이다.
그 여자는 내가 아직 살아있을 거라 믿고 있다. 우린 핸드폰 화면 속 서로의 얼굴 보며 대화 나누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고야 만다. 숨소리와 말하는 소리, 피부 위 주름마저 같은 공간에서 느끼지 못하면 모두 의미 없어지는 것.
우리에게 공기가 없다면, 그들을 더 우울하게 하는 건 서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란 믿음 그 끝을 향한 확신일지 모른다.
누가 남겨 놓은 발자국조차 없는 길을 걷고.
걸음에는 과연 뜻이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 없는 것이었다. 길이 있어 걷는 걸. 그 끝에서 물음 던지곤 했던 그 자는.
"안 힘들어요?"
라 부장에게 난 말했다. 내 뒤를 따라 걷는 그 자는 가끔 지쳤을 테다. 어쩌다 한 시간씩 두 시간씩 무작정 걸을 때에도 그는 아무 불평 없이 내 뒤를 따라 걷는다. 그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배가 고파 식당에 가려면 지갑을 꺼내야 하는데 뒤돌아봐야 했다.
“괜찮습니다.”
알 수 없는 짧은 한숨과 함께.
어느 날부터 그와 식당을 오면 봉사원들 눈빛은 무엇 때문인지 날카로워졌는데.
처음에는 날 봤지만 곧 그를 보는 듯했고. 창문 너머 길 건너편에 자동차 한 대가 세워져 있어, 그래서 누가 우릴 쫓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핸드폰을 소유할 수 없어 난 수첩을 들고 다녀야 했는데 가을과 겨울이면 코트 주머니 한쪽이 축 처졌다.
"무언가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십니까?"
잠깐 동안 말하지 않던 난.
“뭐 그렇죠. 라 부장도 절 쫓을 때 그러지 않았나요?"
그 순간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오른 것이었다.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 하나를, 어딘지 빈 듯했던 그 여백을 채울 장면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곳에서 난 그랬다.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그 내 절대적 신념을 거둘 수 없었고, 그 차는 안을 볼 수 없도록 유리 창문에 무언가를 붙여 뒀기에 음흉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아무 할 일 없이 도로 가에 차를 세워두고 시간 보내는 일은, 그건 이 땅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 같았다.
라 부장을 아무 말 없이 3초 동안 바라보고, 그러면 그는 그 차를 향해 고개 돌린다. 정해진 시간 동안의 무표정, 그와 나 사이에 신호 같은 게 생겼다. 한 번씩 정색하며 눈을 마주칠 때는 또 주위를 살피는 등 가끔 헷갈려 했지만.
"우릴 미행하는 거 아닙니까?"
집으로 돌아와 외투를 식탁 의자에 걸쳐 놓으며 난 말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그러면 그는 무슨 말을 할지를 떠올리고.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도 곧장 일어나지 않는다. 수첩은 빽빽해지고 종이는 점점 해졌고 난 더 바빠진다. 봉사원들이 상을 치우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씩 늘어져, 그들 한쪽 다리는 꺾이거나 아예 한쪽 팔을 카운터에 걸쳐 놓는다. 그 시간 난 너무도 조급했다.
극은 고조되어 가고, 내 감정은 먼 바다 위에서 큰 소용돌이를 만난 듯 요동치며. 맥을 끊는 소리는 언제나 그 목소리였지만.
"동지!"
높고 넓은 어느 고원의 그림이 걸린 벽 앞에 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장은호는 내게 다가와 국립교향악단에서 음악을 만들 것이라 하는데. 마치 내 등 어깨에 날개라도 달아줄 듯 그는 말했다.
"음악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종이 울리듯, 어쩐지 그 목소리는 날 깨우기도 했던 것이다.
"먼저 몇 곡을 연주한 뒤 녹음해 들려주겠습니다."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으며, 그럴 때면 왜인지 자신 있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으레 그런 모습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말만 남긴 뒤 자리를 뜨거나 불쑥 다시 찾아와 날 격려하듯 몇 마디 하기도 했다.
다시 떠나는 그 뒷모습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며 난 말했다. 서록에게 묻는다. 넌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고. 그와 난 그 고원 반대편에 서 있었다.
"어릴 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인민극장에서는 정기적으로 음악회가 열렸고 평양 시민들은 음악 들을 권리가 있었다. 이 도시에는 록스타조차 없으며, 그럼에도 난 왜 그들이 서양인들의 음악을 따라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서록 구두 옆에 가방이 놓였고 그 속이 문득 궁금했던 것이다. 벽이 없는 그림 앞에 앉아 멍하니 그곳을 볼 때였다. 그에 대한 의심. 그 가방 속인지, 그토록 작은 가슴 안에 큰 열망을 품은 인간들에 대해 난 믿지 못할 마음을 가졌다.
그는 가방에서 작은 카메라 한 대를 꺼냈는데 그건 러시아제 사진기였다. 그의 할아버지 이름이 조르키였다면 난 그 머릿속 생각들을 추측해낼 수 있을지도. 할아버지의 것이었던, 그토록 낡은 상자 속 숨은 더는 숨 쉬지 않는 것을.
서록, 그는 마치 남의 것을 보듯 그 카메라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그가 대답한다. 먼저 내가 물었던 건.
"어떤 사진을 찍고 다니니?"
사진이란 역사 그 과정을 알아가는 일이었음을. 필름은 그 어둑한 세계에 살며 찰나의 순간들을 남긴다. 빛에 의한 상처, 그 흉터들마저 아름답다면 넌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앨범 속 남은 할아버지의 유일한 사진이 자신이 기억하는 그의 단 한순간 모습이라 했다.
“전 할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전기기술자였고.
서록은 그 삶을 동경했을까. 전류처럼 전해져 온 그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힘이란, 그게 그토록 애틋하기만 한 것일지.
자신을 고문하듯 주입시킨 사상에 대한 원망 가득한 충성은 아니었나.
아직 난 이해하지 못하겠다. 고개 돌려 대사를 주고받는 리승우과 함설희에게로 시선을 두며.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곧 서로의 입술을 갖다 대고 부딪힐 듯이.
그들은 실제처럼 연습 중이다. 카메라가 돌지 않는 세계에서 연기하는 순간, 차라리 지금이 더 순수하지 않나.
자신도 모르게 성이 붙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 만약 지도자 동지 이름에 아우구스투스라는 성을 붙인다면.
붉은 깃발이 군인 얼굴 앞에서 펄럭이다 희미하게 사라지고, 그걸 찾고 구한 뒤에는, 그리고 난 그 붉은 천에 어울리는 얼굴을 카메라 앞에 세워야 했고.
그 국기는 로마 제국의 깃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고. 그 국기를 보다 확신하며 낸 답이다. 서록은 1998년생이었다. 자기 할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했고, 그가 이 세상에 나타나기 7년 전 그는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얼굴 표정이 그려지지 않는다 했다. 그 모습에는 왜인지 슬픔조차 서려 있지 않았다.
"전 뻬쩨르부르크로 가고 싶습니다."
순간 그 눈망울에는 알 수 없는 빛이 닿은 듯했으며.
영화란 완성되기까지 수백 번도 고쳐지고 또 고쳐짐을. 수많은 성취 좌절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개 떨어트리기를 반복하고.
어느 순간 자기 두 발이 그 기차역에 놓여 있는 걸 볼까. 그 꿈을 버리지 말라 했다. 희망 없을 이 삶에 난 그런 멋진 말만 하는 법을 배워 써먹었음을.
붉은 깃발이 군인의 얼굴 앞에 펄럭이다 희미하게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그 얼굴이 국기 앞에서 흐려지는 걸로 바꿨다.
난 그에게 외삼촌 같았는지도. 존재조차 알 수 없다 불현듯 자기 앞에 나타나 긴 그림자를 드리운.
"여행을 가려면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하지."
현실은 늘 씨름의 연속일 뿐이었다. 내가 평양으로, 또는 박완서가 신교육을 받기 위해 고향을 떠난 것처럼, 그런 것이었다면 난 덜 억울했겠지만.
영국 땅에 이교도로써 자리잡을 줄 알았던 난 결국 이 땅에 발 붙이고 말았음을. 이 국가에 머물 수 있는 단 하나의 자격이 신앙이라면 난 무신론자에 불과했다.
떠나는 게 내 길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더 먼 세계로 달아났을 때 그는 영화총국장이 되어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애국가
콘크리트 관중석 위를 뛰는 두 남자의 모습을.
운동장을 향한 그 객석 사이로 난 통로를 지나는 그들 운명을 그릴 때. 계단을 오르는 내 모습이, 그러다 본 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던 그의 모습이라면.
그들은 서로 다른 지점으로 향한다. 우리가 그 끝에 섰을 때 더는 그는 날 따르지 않고 그렇게 난 돌아 반대 방향으로 걸으리라.
지금쯤 그에게 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후회도 미련도 없는 사람처럼 떠나온 나를, 날 원망하거나 때로 그리워하며 내 얼굴 떠올릴까.
어느 소설가가 내게 한 말처럼, 작가의 세계는 꿈같지 않냐는 그 말과 같은. 더 이상 현실에 있기 힘든 꿈에서, 점점 그 시간들이 다가올 거라는 예고로부터 난 본편 속으로 들어온 주인공과도 같다.
듬성등성 갈대가 자란 곳 앞에 한 대의 차가 세워지고. 곧 먼지를 일으키며 다른 차 한 대가 멈춰설 때.
그곳은 평양 외곽 지역의 대동강변이었다. 그 장면을 찍으며, 서록과 나눴던 그때 대화들을 떠올리며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내가 다시 만났을 땐 서로를 못 본 체 해야 할 수 있기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