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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24. 2024

두 얼굴

2024 10 24


 그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해 고개 돌린 채 있었다. 선을 그어 나눌 수 있는 건 오직 밝음과 어둠뿐이지만, 그럼에도 그 어두컴컴한 곳에서 우리 한 일을 그 아이가 용서할 수 있을까. 훗날 우리에게 묻지 않을까. 당신들은 왜 사랑을 나눴는가 하며.

 난 지금 그 아이 얼굴을 볼 수 없다. 내 책상 위 옷 주머니 지갑 속 어디에도 그 사진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래서 난 정말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그를 볼 수 없다. 사진이 있었다면 그 모습을 떠올렸겠지만, 누군가가 카메라를 갖다대 그 아이 움직이는 모습을 담아냈더라면, 그리고 내게 전해왔다면.


 문이 철커덕 닫히며 나는 소리에도 등은 차갑다. 의자가 바닥 긁는 소리에 고막이라도 긁힌 듯 신경이 곤두서고. 장은호 그가 마지막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 난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난방기가 고장 나 발가락 끝이 점점 무감각해졌고.

 긴 책상의 끄트머리에 어린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인형 동지, 소개시켜 드릴 동지 한 명이 있습니다."

 그는 성이 아닌 내 이름을 부르곤 했는데. 그때 내 두 눈 시선은 대각선으로 향했으며.

 아직 물들지 않은 자의 사상일 것을, 난 그의 눈을 마주치며 그런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 작은 머리 안엔 아직.

 그 이름은 서록이었다. 홀로 책상 다른 면에 앉은 장은호는 내 반대편 끝 자리에 있던 그를 마지막으로 소개했는데.

 대학을 다니는 20대의 남자였다. 그러나 난 그 모습을 시샘하지 않았으며 질투하지도 않았음을.

 '지금의 상상이야말로 널 이끌 것이다'

 넓고 긴 계단 관람석에 앉아 아직 저 커다란 운동장을 바라볼 그 시선을 부러워할 뿐이었는지도. 대학 시절 어느 교수에게서 명령처럼 들었던 말을 그에게도 해주고 싶었다. 젊음은 그 언어만으로 유혹적이며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붙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형 동지께서 영화에 대해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 말에 그는 눈을 떨어뜨렸고 내 눈을 피했다. 내가 아는 건 자기 야망을 숨기는 자야 말로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이 무리에 낄 자격을 얻은 건지. 실은 진짜 궁금했던 것이다. 싸울 수 있는가, 혹은 버텨내고 이겨낼 자신이.

 그가 본 건 뭐였을까.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름 뜻이 뭐지?"

 그가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는 모스크바로도 파리로도 유학을 떠나 본 적 없다 했다. 집을 떠나, 나라의 끝 경계를 넘어 아주 먼 땅으로 떠나본 경험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과연 너에게 노란 털을 가진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영화를 좋아하니?”

 복도 한 편에서 창문 밖을 보며 이야기했다. 어디로도 시선을 두지 못해 귀만 세우는 듯했던 그 모습은. 내 아이 아니었던. 그럼에도 신발 신기고 끈을 단단히 매어 뛰게 해야 했던 건 왜인지. 그리고 또 어떤 영화를 좋아하니.

 흙은 점점 사라져가고 풀들은 모두 뿌리 뽑힌 듯 곧 존재하지 않을 테니. 이제 넌 검은 땅을 달려야만 할 테니. 그러기에는 밑창 얇은 신발보다 두꺼운 러닝화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 많은 머리들이 내 움직이길 기다릴 때의 그 구역질 날 것 같은 기분은. 영화는 정녕 감독의 예술이란 말인가. 내 인생 하나도 벅찬데 누굴 가르치라는 말처럼 쓴웃음 나오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그놈들이 주말이면 모여서 책 읽는 모임을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모두 모여 대본을 읽는 자리. 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 속에.

 그를 처음 보게 된 곳이었다. 뜻하지 않게 그들의 방언까지 탐구해야 했고, 저 머리 선을 넘는 감정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내려 앉힐까, 그들에 말하기 위해 난 적절한 단어들을 선택해야 했으며.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큰 책상 하나를 둘러싼 그 모든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와야 함에도 난 그 하나에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훗날 얻게 될 원망 하나를, 아니 인생에 남을 단 하나의 원망이라도 없애려 그랬던 건지도.

 난 도대체 누구에게 배웠던가. 영화라는 일, 이 노동을.

 내게 감시자가 한 명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카메라 뒤 저 멀리에서, 등 뒤 이곳 저곳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다는 걸 느낄 때면.

 그 모든 걸 참을 수 없고 견디기 힘들어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러니까 지금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웬만하면 영화감독은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여배우가 맨발로 뛰는 장면을 찍기 위해 우린 땅바닥의 돌을 주웠고.

 군인이 되어 떠나는 그를 쫓아 뛰는 장면에서 그 배우의 발바닥을 보호해야 한다 생각 들었던 것이다. 그건 1688년 영국에서 일어난 명예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여자의 발에서 피가 나선 안됐음을.

 우리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카메라가 서고 환한 불이 밝혀져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듯할 때, 삶의 한순간이 실현되는 그 조그마한 틀 안에서.

 처음 그 배우가 뛰는 모습을 보곤 확신이 들었다.

 “좀 우스꽝스럽게 뛰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수현이라는 역할을 맡은 그 배우에게 말했던 것. 수현, 그래서 그 여자는 날 기억하며 살고 있을지. 가슴 어딘가가 뭉개진 듯 살며.

 그 모습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으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왜 사랑은 끝이 난 뒤에야 다시 시작되는 거죠?”

 그날 수십 번도 더 들어야 했던 대사다. 내가 그 여자에게, 또는 어느 누군가에 하고 싶었던 말을.

 더 들을 수 없어 귀가 고장이라도 났으면 싶던 그 끝에서.

 “오늘 촬영은 어땠습니까?”

 희망 잃은 나무들처럼, 이젠 거리를 밝히지 못할 가로등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가는 걸 보면서. 난 그 물음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는데. 순간 창문 밖 스쳐가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 그랬다.

 “라 부장은 집에 안 가요?”

 그에게도 사랑이 있는지. 그 곁에 누군가가 있어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자식은 있는지, 있다면 왜 보러 가지 않는지 문득 궁금했다. 내게 내 자식을, 또는 그 여자에 대해 물어도 나 역시 곧바로 대답할 수 없겠지만, 또 그 이야기는 너무도 길 테지만.

 내 아내를 만나 함께 했던 그날들은.

 그 여자는 머리카락이 무거운 걸 싫어했으며 그래서 늘 머리 길이가 짧았고.

 내 등 눕힐 곳 있는 집으로 온다. 그토록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벗고, 몸을 씻고 난 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채로.

 내 아내는 긴 치마를 입어서라도 다리를 가리려는 습관이 있었고 그러므로 바지를 즐겨 입었다.

 "주무십시오."

 한 침대에 누워도 둘이 되어 떨어지길 원했던 그 여자에게 난 가끔 서운했다. 그렇게 그 방 불은 꺼졌으며. 

 내 방 불은 여전히 켜져있고 내 뒤틀린 몸은 점점 그 좁은 구렁텅이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 넓어지는 곳. 투명한 술병 속 바닥에 그가 있다.

 늦은 밤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 없다는 변명으로, 신문 한 장 깔지 않고 길바닥에 잠드는 주정뱅이처럼, 무슨 말이라도 지껄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삼킨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에 보고한 게 그 여자라 생각하면 발걸음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이. 내 하루 일상이 그 손가락들을 통해 전달된 것이었다면. 저 모퉁이를 돌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 사이 한 여자가 서 있을지도.

 흔들려 곧 쓰러질 듯 그 여자를 뒤쫓는다. 노랗거나 빨간 불빛들 아래에 스스로를 비춰 어느 골목의 끝으로 오고.

 그곳에서 멈춘다. 다시는 내 있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기에.

 그 여자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것임을. 단지 난 그게 궁금할 뿐이었다. 지도자 동지에게는 아이가 있는가.

 그는 내 앞에서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두고 오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자신에게도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는 그 말뿐이었음을.

 그에게는 철저히 보호되고 가려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아들이 하나 있다고.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일차로 터널 벽에 쓰여진 낙서처럼 스쳐 지나간 그 글자들을 본 기억이 난다. 또한 그 아이를 낳은 여자의 존재에 관해서도 알려진 사실은 없었지만.

 내 아들은 지금쯤 말을 할까. 아빠라고 말하는 걸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머릿속 지워버릴 수 없는 그 단어를 잊은 걸로 만들기 위해 그 아이는 얼마나 많은 새 단어들을 찾아야 할 텐가. 몇 km 를 걷고 또 어떤 굽이치는 길들을 지나야 할 텐지.

 그 고통을 상상하고 떠올리고 또 감내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음을. 그래서 난 그 말을 믿는다. 지도자 동지에게 숨겨둔 아이가 있다는 그 이야기를.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불과 3년도 되지 않았으니, 그건 서른이 넘은 남녀에게는 꽤 중요한 이야깃거리이니 말이다. 직업과 결혼 또 가져야만 하는 아이, 그러고 난 후의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질문 던질 틈도 없이 마흔이 되고.

 그의 일 직업은 누군가가 정해준 것이었으리라. 사람들 앞에 서는 것, 또 그 앞에 서 제 얼굴을 드러내 말하는 일. 그 사랑은 누군가가 꾸며 놓은 무대 위에서 이루어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 얼굴에 조명을 비춘 게 누구였는지 알 수 없듯, 서로 달랐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그들 삶은.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 아내에게서 편지가 왔다고. 라 부장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아내 내 아들 소식을 그는 전해주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유지신은 먼발치에서 그와 내 눈치를 봤는데. 그리곤 고개 돌리고 문밖으로 나가곤 했다.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나무를 본 듯 그들은 날 그렇게 외면했다.



 갤러리들



 부산국제영화제 때였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곳은 지하 어느 술집 바였다.

 비가 예보된 흐린 날 모래 위에 지어진 작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러나 운 좋게 비는 내리지 않고 행사는 더욱 짙은 구름이 몰려올 때 끝이 났다.

 그때 내가 거기서 무슨 말을 했는지 난 알 수 없었는데,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말이다. 새벽이 되도록 술자리를 끝맺지 못해, 영화 속 감정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올 때 관객들은 더 피할 곳이 없다 했던가.

 그때 난 술 깨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곳에서 난 구구절절 쓸데없는 말만 하고 내려왔다.

 이따금 터진 박수소리들과. 무대를 내려올 때가 되어서야 비가 쏟아졌고 계단 주위를 둘러싼 몇몇 사람들 말소리가 내 주위를 머무르다 사라졌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 17시쯤 김정철이 있는 호텔 꼭대기 방으로 가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테라스에서 무대를 보고 있었다며, 자신은 곧 서울로 떠나야 한다며 창가 옆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말했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나도 알 수 없었다.

 “몰라요.”

 그때의 내 모습이.

 어젯밤 나와 함께 술을 마신 배우였다. 로맨스는 손가락 하나만 이상하게 움직여도 그런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걸, 왜 그걸 하지 않냐 그는 내게 말했던 것이다. 난 그게 손발 오그라드는 일이라 했다. 그 리얼리티를 표현하는 일에는 큰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그가 내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붓는다. 어젯밤 그와 난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장어 구워 피어 오른 연기가 천장을 타며 퍼져나가던 때.

 우리 사이 문제는 늘 술처럼 생각됐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감독 배우의 사이가 아니라.

 우린 서로 선을 넘지 않고 가끔 서로를 궁금해할 뿐이었다. 그가 부산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난 기뻤다.

 현대자동차에서 제공한 의전차량들이 그곳 주위를 오고 갈 때 난 거기서 무얼 찾아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잡지사 기자들은 그리도 감독들을 찾고.

 어떤 이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난 다시 술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날 밤이었다. 평론가 김일성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몇 있었는데 내 두 눈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 여자에게로만 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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