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흘렀으면 좋겠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설 속 영화의 엔딩곡으로 그 음악이 흘렀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건 내가 쌓아온 음악에 대한 가장 귀중한 정보 중 하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가슴 한 편에 자리 잡은 곡이었다. 러시아에 대한 꿈이 그곳으로 날 이끌었는지 모른다.
그 국가 심장 어딘가에 머무르듯 난 서성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자신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사용한 곡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어릴 적 본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도 사용됐던. 난 정말 기억하지 못했던 건지.
어느 날 밤 대구 거리에서 본 장면이었다. 유리로 된 벽 안에 남자 셋이 모였고 큰 화면을 통해 보이는 영화 속 이은주의 모습을 봤다. 남자 셋은 어딘지 취해 있는 듯했고.
그때 난 내 소설에 푹 빠져 있었는지 모른다. 꿈이 아닌 곳을 헤매다 다시 그 얼굴을 봤을 때 난.
그 여배우가 죽었을 때 난 슬펐다. 어릴 적 만난 우상 중 하나였을지도 모를, 그렇게 일찍 그 배우가 사람들 곁을 떠날 때 그들은 모두 슬펐을 것이다. 그 배우를 다시 한번 추억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다시 한 번 꼭.
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천재적인 감독인 것을 알았지만 정작 그의 영화를 온전히 다 감상한 것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단 한 편이었다. 그 이름이 필요했다. 난 반드시 어느 목 어느 과에 속한 동물이어야 했고 그가 가진 유전적 면모들을 내 몸속에 있게 해야 했다.
난 사람들이 DNA의 필연성에 대해 논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그건 우연일 뿐이다. DNA가 얼마나 무서운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동물은 유전자에 지배당할 운명을 타고날 뿐이었다.
내가 쓴 소설을 읽고 여성을 상징적 도구로만 사용했다 그런 비판을 듣는다면 누군가 그 소설을 깊이 감상한 것일 테니 감사할 따름이겠지만. 단 몇 명의 사람만이 읽었을지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그럴지도 모른다고. 남성에게 여성의 진실된 것들을 보여달라 말하는 건 되려 무모한 요구인 게 아닐까.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도구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난 여성성에 뿌리를 둔 춤을 췄다 믿는다. 권력에 사로잡힌 남자들이 쓰는 언어가 아니라, 그들 언어를 따라 하며 페미니즘을 외치는 이해 못 할 인간 또한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그 말이 와닿았던 건, 여자 옷을 만들려면 게이가 돼야 한다는 그 말을.
맞다. 입어 보지도 못하는 옷 드레스 따위를 남자가 어떻게 만드는가. 내가 아는 유명 남성 디자이너들 중 게이 아닌 사람도 드물었던 것 같긴 하다. 남자는 왜 여성 캐릭터에 대한 환상에 빠질까. 어쩌면 그런 물음이었을지도.
그 영화의 마지막은 어떤 장면이었을지 궁금한 건 나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웅장한 소리들이 울려 퍼져 극장 안을 가득 채울 때의 기분을 상상했다. 단지 내가 원한 것이었는지도. 그 곡은 내가 아는 가장 힘 있는 곡 음악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 이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나라는 지금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곧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내겐 너무도 어려운 문제.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가진 채 충성하며 살아야 할지, 자유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소속됨 없는 신분처럼 살아야 하는 건지.
난 이 나라를 사랑하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하려 한다. 멋진 군인들을 보고 싶고 온 세계에 이름 날리는 이 나라의 영웅들을 보고 싶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에 큰 회의를 가진 채 살게 된다. 그런 운명일지 몰랐다.
공산주의가 나쁜 것이고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라 배운 어린 시절. 그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게 너무 허망하다는 생각도 했다. 도대체 누가 스파이인 건지.
공산주의를 탐미하는 젊은이들을 때려 잡는 일이 70년대 80년대에는 애국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지금 사람들은 북한이 얼마나 심각한 독재 국가인지를 보고 있다. 이게 이념의 문제인가. 궁지에 몰린 몇몇의 절대 권력자들은 더는 움직일 수 없는 곳에 발을 디딘다. 지금 이 순간 그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면.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일까 서태지의 노래일까 떠올려봤다. 진짜 독재자는 누구였을까. 나는 내 안에 또는 모든 그들 안에 독재의 정서가 내재돼 있다 믿었고 그렇게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