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바다가 우연히 마주친 큰 아름다움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연출을 하고, 여자를 만날 약속을 하면 바다 풍경의 카페를 알아보고 레스토랑을 찾겠지.
밖으로 나와 함께 거닌다. 그곳 어딘가에 멈춰, 카메라 앞에 서 자신을 찍어달라는 여자. 내가 스탠리 큐브릭이었다면 그녀를 흐리게 하고 바다를 선명하게 비출 테지만 그러다 혼날지 모른다. 그녀는 아마 장난이라고 생각하겠지.
풀이 있어 다가가면 그건 궁금증일지 몰랐다. 쪼그려 앉아 그것을 바라보거나 만지면 궁금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두가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가끔 어린아이의 손을 빌린다. 그 등 뒤에 서 나도 한 번 관심을 가져볼 뿐이다.
당신의 물은 술인가. 안주는 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물은 그 음식을 편히 넘기기 위한 것인가. 물어보려 했더니 그 남자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의 창문 유리로 비친 내 모습이 왜 내 모습이 아닌가. 키는 자랐고 얼굴은 거칠었으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나는 왜 내 얼굴을 스스로 사진 찍는가.
그러나 내 손은 이제 그녀의 손에 있지 않고 내 외투 주머니 속에 있다. 부스러기 같은 것이 만져질 뿐. 더 이상 촉촉하지도 땀이 흐르지도 않는다. 건조한 곳에는 풀도 바다도 없다. 모두 지어낸 이야기일 뿐.
그곳에 있던 연인이 아름다워 보이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