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마무리 짓는 시리즈
고국에 돌아오니 공기 자체가 다르다.
공기의 습도와 온도, 서울 사람들의 온기, 그리고 내 방의 향기까지.
모든 것이 익숙한데—오래 비워둔 서랍처럼 낯설기도 하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하루 이틀만 지나면 금세 몸이 기억한다.
마치 내가 매일 여기서 살던 사람처럼, 숨과 걸음이 이 도시에 다시 붙는다.
지난 화에서 예고했듯이 브런치북 <나는 여전히 한국을 빛내고 싶다>의 마지막 30화는 서울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번 귀국은 “아예 돌아오는 귀국”이 아니라, 과거를 온전히 정리하러 온 귀국이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작가님 중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지금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나요?”
좋은 질문은 좋은 생각을 꺼내준다.
중국에서 그 질문에 답할 때, 나는 내 마음이 마치 약대 시절—암기과목 다섯 과목을 연달아 응시해야 했던 기말고사 기간 같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연구계획서에 매달리고, 연구과제 신청서를 두 개나 동시에 끌고 가는 한편, 서울에 들어와서는 국제이사를 앞두고 있으니… 정말 “연속 밤샘”의 계절이었다.
시험만 끝나면 속이 엄청 홀가분해질 것 같았다. 그때처럼.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은 또 다른 기억과 닮아 있다.
20년 전, 특목고 진학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멀리 이사했던 그때.
17년 전, 대학교 진학을 위해 부모님 곁을 떠나 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던 그때.
인생은 단계마다, 익숙했던 환경과 삶의 방식에서 온전히 벗어나 새로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아쉬움은 그 과정의 통과의례처럼 늘 따라오지만, 아련함이 옅어지는 데엔 시간이 약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앞당기는 건, 결국 환경 세팅과 마음가짐,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인 것 같다.
그때그때 완성해야 할 숙제를 성실히 해내다 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두렵지 않고,
상상했던 것보다 작별인사가 덜 아프다.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아쉬움보다 기쁨이 더 크게 남기도 한다.
나는 있을 때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더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5년 동안 거주한 계약 만료를 앞둔 내 전셋집에 돌아와,
사흘 동안 짐 정리를 하며 20대 청춘과 작별 인사를 했다.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중국으로 이주한 지 벌써 만 3년.
중국으로 이직하며 대학에서 교수 대우로 준 아파트에 살면서, 나는 여유 있게 서울의 집을 유지해 두었다.
애초에 5년 계약으로 잡아둔 집이었고,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집을 빼는 것으로 마음을 준비해 왔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한국-중국을 여섯 번 오가며 캐리어로 조금씩 ‘보따리 이사’를 해왔다.
선박 국제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시간을 벌어가며 “필요한 물품 / 기증할 물품 / 폐기할 물품”을 차근차근 선별하는 보따리 이사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았다.
해외 이사의 가장 큰 장점은, 무게와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그 한계가 오히려 내게 질문을 준다.
“정말 필요한 게 뭐지?”
“내가 끝까지 가져가고 싶은 것은 뭘까?”
수하물 23kg. 그 숫자 앞에서 결국 사람은 정직해진다.
특히 책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기내 반입 캐리어와 백팩 무게만 합쳐도 23kg를 넘길 때가 많다.
가끔 수하물 1개를 추가해 출국하기도 했고, 이번까지 여섯 번을 꾸준히 옮겨 이사를 마칠 예정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정리해야만 했던 물건들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버려야 하는데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 뿐이더라.
이번 여섯 번째 이사는 특히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한 물품이 더 많았다.
귀국 당일 저녁부터 기증품을 정리해 총 8박스를 준비했고, 다음 날 직원 방문수거 때 전달했다.
10여 년 동안 자취하며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을 십수 번 해왔는데, 도서와 잡화 중심으로 기증하다 보니 연말정산에서 기부금으로 돌려받은 누적 금액이 100만 원을 넘었다.
이번 정리는 품목이 가장 많았으니, 얼마나 돌려받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큰 숙제 하나를 완성한 기분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버려야 하는데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들 중,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한 건 공부자료였다.
아름다운 가게 직원들을 돌려보낸 뒤, 이제는 10여 년 쌓인 유인물 자료를 폐지로 정리할 차례였다.
학부 때 전공과목 족보와 국가고시 자료, 토플 공부자료, 대학원 강의 유인물, 종이로 인쇄해 두었던 논문들까지.
큰 종이박스로 열몇 박스를 끌어모아 폐지로 처분했다.
버리기 아까웠던 청춘의 기록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속 시원했다.
이제는 보내도 된다고, 내가 나에게 허락을 내린 것 같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23kg 캐리어에 담아 갈 것은 무엇일까?
꼭 필요한 책과 의류, 믿고 쓰는 한국 피부재생크림,
해외생활을 위한 처방약과 건강기능식품,
그리고… 추억이 담긴 청춘의 기록들.
짐을 정리하다 보면 편지가 그렇게 구석구석에서 나온다.
대학생 때 가르쳤던 과외 학생,
대학원 및 포닥 시절 가르쳤던 후배들.
무엇이 그렇게 감사한지,
“정성껏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반복해서 적혀 있다.
그 편지들은 꼭 챙겨간다.
반면, 예전에 받았던 고백편지나 연애편지들은 조용히 찢어 버린다.
어떤 기억은 간직함으로써 나를 앞으로 보내고,
어떤 기억은 내려놓음으로써 나를 앞으로 보낸다.
“교수님, 혹시 두쫀쿠 들어보셨어요?”
“들어보기는 했지.”
“그럼 드셔보셨어요?”
“아니 안 먹어봤지.”
“그렇게 유행인데, 한번 드셔보시라고 사 왔어요.”
짧은 귀국이라 일정이 빡빡하지만, 지난 12월 스승님께서 전화 주셨던 터라(27화),
더는 안부 인사를 늦출 수 없었다.
내 성공은 결국 내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스승님의 이끌어주심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명색이 수제자였던 내가 독립해 해외에서
서바이벌과 승승장구를 동시에 하고 있는 근황이 스승님께 얼마나 궁금할까—그 마음이 자꾸 걸렸다.
그래서 귀국 후 미리 약속을 잡고 금요일에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티백 선물과 두쫀쿠를 들고.
내 직감대로, 그 유행하는 두쫀쿠를 누군가 사드릴 만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았다.
선배들이 “우리 랩 영웅이잖아, 교수님이 얼마나 예뻐하셔”라고 말하던 그 시절처럼,
나는 다른 제자들보다 ‘엄격-근엄-진지(엄근진)’ 캐릭터의 교수님과 비교적 편하게 지냈다.
정확히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연구를 확실히 할 때는 확실히 하고, 넉살도 부리고, 농담도 하고, 특이하고 맛난 간식도 사드리며—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가까워졌었다.
교수님은 무척 반가워하셨다.
내가 중국에서 전임교수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자리를 옮겼다니, 걱정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원래 다녔던 대학에서 떠났다길래 걱정했었는데,
더 잘 되어서 갔다니 너무 기쁘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네 교수님. 결론적으로는 더 잘 되어서 옮긴 거죠. 원래 대학은 중국 탑티어 대학이긴 한데…
임용 조건이 그렇게 어려웠음에도, 임용된 뒤에야 조건부가 있다는 걸 알려주더라고요.
임용 후 첫 6년 동안 CNS 자매지 급 논문 주저자 2편 이상, 그리고 국가연구과제—
한국으로 치면 창의연구과제급 과제를 따내야 테뉴어 트랙을 보장해 준다고요. 달성 못하면 자른대요.
그래서 젊은 교수들이 다른 대학교로 이직을 많이 한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만기 시점이 다가올 때 권고사직 공포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여러 명 있었다고 들었어요.
성과를 최대한 뽑아내기 위한 도덕적이지 않은 선발 방식이죠. 저도 현지에서 깨닫고 빨리 더 좋은 대학으로 옮겼어요.”
“그렇게 된 사연이구나. 예전에 한국에서도 카이스트 쪽에 젊은 교수 많이 뽑아놓고 성과 상위 30%만 남겼던 적이 있었거든.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때도 능력 좋은 교수들이 일찍 다른 데로 옮기고 그랬었지. 박교수는 혼자서 잘 처리해서 너무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교수님. 사실 힘든 시기에 교수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던 이유가… 혼자 해볼 만큼 도전해 보고, 그래도 어려우면 도움 요청 드리려고 했어요.
다행히 중국 의대 탑 4에 드는 더 좋은 대학에 부교수로 승진하면서 임용됐고, 작년에는 학술상도 받았어요.
원래는 멋진 논문 성과가 세상 빛을 본 뒤에 선물처럼 들고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투고 준비 중이라…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좋은 소식이라도 먼저 들고 찾아뵙고 싶었어요.”
“너무 잘 돼서 정말 기쁘네. 박교수 잘돼서 축하하고, 와줘서 고마워.”
“제가 더 감사하죠, 교수님. 교수님 보호 아래서 공부하고 연구하던 시절에는 피부로 잘 몰랐는데… 교수님이 외풍을 막아주셨던 덕분에 그때가 편안하고 좋은 시절이었더라고요.
지금은 그걸 제가 직접 감당해야 하다 보니, 교수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구나… 새삼 깨닫게 되더라고요. 정말 감사해요.”
“그래도 지금 이미 랩 꾸려가고 제자 키워가다 보면 앞으로 더 재미있고 보람 있고 그럴 거야.”
“맞아요 교수님. 지금도 대학원생들 지도하면서, 처음엔 서툴던 학생들이 점점 혼자 해내는 모습을 보면 보람 있고 즐거워요. 게다가 약대 수석하는 학부생이 제 교수 프로필 보고 ‘교수님 따라 연구하고 싶다’고 지원해서, 지금 제 랩에서 학부생 특성화교육받고 있어요. 그럴 때 묘한 뿌듯함과 행복이 올라와요.”
“축하해, 박교수. 참 잘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될 거야. 나는 이제 박사학생은 안 받거든. 정년이 많이 남지 않았어. 그런데 아직 연구가 남아 있어서 포닥만 몇 명 뽑았어.”
“벌써 그렇게 되셨군요… 교수님, 제가 논문 나오면 제가 재직 중인 대학으로 초대할게요. 한 번 꼭 모시고 싶어요.”
“고마워. 덕분에 한번 박교수네 대학교도 가보고 싶네. 앞으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고, 우리 계속 연락하자고.”
스승과 제자였던 우리가,
처음 만났던 4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근엄한 교수님과 학생 사이에서,
경외하는 사이로 지내다가…
시간이 흘러 60대 초반과 30대 후반의 교수들이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3년 만의 재회를 결심하게 한 건,
서울 집을 정리하며 과거의 흔적들 사이에서 건져 올린 감정과 추억 덕분이었다.
‘더 잘 된 후에 찾아가야지’라는 내 안의 높은 기준을 스스로 허물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은 단 하나였다.
있을 때 잘해.
5년 살아온 집을 정리하며, 마지막 며칠을 이 집에서 살면서도 나는 매일 청소하고 바닥을 정성껏 닦는 나를 보았다.
내가 살았던 공간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을 담아, 경건하게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서서히 보따리 이사를 하며, 과거의 피땀노력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자꾸 확인했다.
그 감정이 나를 스승님에게도 데려갔다.
“감사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한다.”는, 너무 단순하지만 늘 미뤄지는 진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언제일까.
지금은 스승님도 나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가장 젊고 건강한 날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이 세상에서 충분히 살다, 진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게 갑자기 피부로 와닿았다.
그래서 꼭 지금이어야 했다.
미래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내가 앞으로 어디에 정착할지, 끝까지 해외에서 승승장구할지,
성공해서 한국으로 금의환향할지—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미지의 미래는 결국 현재의 내가 만들어낼 것이고,
과거에 나를 키워준 부모님과 스승님에게 드리는 감사는
지금 제때에 해야 나중에 후회가 되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하는 게 있다.
중학생 때는 중학교 공부에 집중해야 좋은 고등학교로 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성적을 지켜야 목표한 대학에 갈 수 있었듯이,
학업도 커리어도 결국 “지금”이다음 단계를 결정한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 that’s why it’s called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지수지만, 오늘은 선물이다.
서울에서 내가 살아왔던 집을 정리하며 <나는 여전히 한국을 빛내고 싶다> 마지막 화를 쓴다.
과거를 정리하려고 귀국한 여정 속에서, 나는 원래 계획에 없던 “가장 잘 한 선택”을 했다.
3년 만에 스승님을 다시 만난 일.
이 만남 덕분에 나는 미래의 내가 어느 나라에서 살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고국으로 스승님이 나를 다시 교수로 소환하실지 말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스승님과의 관계가 “의무적 안부”가 아니라
한층 더 인간다워진 학자 사이의 관계로 재정립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 마음속 ‘금의환향’에 대한 집념, 혹은 집착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어디든 상관없이 나는 잘 살아갈 자본을 이미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안에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오히려 내 미래가 더 기대된다.
이번 브런치북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다.
과연 글쓴이는 5년 후, 10년 후에 어떻게 지낼까?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여전히 한국을 빛내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쩌면 장소가 아니라 태도에서 빛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0부작 <나는 여전히 한국을 빛내고 싶다>를 끝까지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