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졸업 후 나를 알고 있는 교회와 세상 모두에 지쳐 무작정 강원도에 있는 건설 현장으로 도망쳤다.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그곳의 작업자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숙소 생활을 시작했다. 퇴근 후 함께 트럭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 집엔 불이 난 듯 담배연기가 가득했고, 밤늦도록 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귀를 막고 있어도 소음과 각종 냄새와 함께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때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주를 위해 했던 선택들이, 하나님나라를 위해 애썼던 노력의 결괏값이 고작 이런 현실이라니.. 라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도피해 그곳으로 도망친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아무튼, 9개월째에 이곳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었고, 퇴근 후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름 유명한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면접 일정이 잡혔다. 현장에는 몸이 안 좋다고 거짓말하고 조기 퇴근하여, 오전 10시쯤 근처 목욕탕에서 먼지들을 씻어내고, 미리 준비한 정장을 입고 2시간을 운전해 서울로 가서 면접을 봤다. 다행히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1주일 뒤 공사 현장을 벗어나 강남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나를 뽑아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이 많았다. 그곳에서 두 달쯤 근무했을 때,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은 곳 중 가장 가고 싶었던 국제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국제학교다 보니 한국어를 쓰면 안 되고, 모든 서류가 영어로 되어있어서 영어에 대한 노출, 교육에 대한 보람, 그리고 급여까지 챙길 수 있는 곳이었기에 그곳을 더 가고 싶었다.
나는 또, 반차를 쓰고 또 그곳에서 면접을 보고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고백했던 그 회사에서 벗어나 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류의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대학에서의 토익강사, 대안학교 영어교사, 그리고 지금의 직업을 거치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여정은,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한 사람의 인생 회피이자, 조금 더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했던 처절한 발버둥이다. 그때의 회사들에는 얼마나 민폐였고 또 나에 대해, 직원들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지 를 몰랐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 이래도 돼?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깃털만큼 가볍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변명하자면, 그만큼 절박했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삶조차도 쉽진 않았다. 계속된 면접과 새로운 업무 학습,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 계속해서 적응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삶의 안정권에 들어온 사람에겐 위의 이 이야기는 웃긴 이야기일 것이다. 30대가 넘었는데도 매너, 책임감이 없고,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처럼 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시선이나 도덕적 책임 때문에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감내하고 사는 것보단 그런 웃긴 이야기의 주인공의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 웃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더라도 여전히 신앙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매너가 없고, 책임감이 없는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또 이런 갈등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계속 나를 찔렀다. 아프도록. 결국, 그런 과정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인'의 의미에 더 가깝게 나를 이끌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간사해질 수 있는지를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아주 약간이라도 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했던 나에 대한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되었다.
노아가 무지개를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듯, 건설 현장을 지나칠 때마다, 그때의 외식 프랜차이즈 간판을 볼 때마다, 또 국제학교를 떠올릴 때마다. 이제는 나도 나만의 무지개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이 , 지금 내 삶에 남겨진 약속의 색깔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