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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엽의 순애보

우리는 왜 슬픔을 재촉하는가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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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구준엽 목격담'이라는 기사를 봤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아내 서희원의 묘를 아직도 매일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보자마자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20년 만에 재회한 아내 얘기를 수줍게 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영화 같은 사랑이었는데, 너무 짧았다.


기사 자체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댓글이었다.

"언제까지 잊지 못하고 있나, 빨리 극복해야지."


이 한 줄을 보는 순간, 20대 초반의 내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나는 2년 가까이 제대로 된 생활을 못했다. 깊은 우울감에 빠져서 직장생활도 제대로 안 됐고, 밤마다 폭식하면서 몸과 마음이 함께 망가져 갔다.


그런데 정작 그때 나한테 가장 힘들었던 건 슬픔 자체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제 그만 털어내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엄마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으실 텐데"라는 말들.


그래서 나는 괜찮은 척했다. 슬픔을 숨기고, 아픈 걸 감추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괜찮은 척하는 게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제대로 슬퍼하지도, 충분히 아파하지도 못한 채 그냥 시간만 흘러갔다. 그 시간들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 구준엽의 모습이 나한테는 오히려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들 눈에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슬픔과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거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애도하고 있는 거다.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6개월일 수도, 1년일 수도,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지금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도망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거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빨리 극복하라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진짜 극복은 그런 게 아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그리워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겪어낸 다음에야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거다.


부디 구준엽이 세상의 재촉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만의 속도로 애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단단해진 후에 다시 자신의 일상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멀리서나마, 그의 시간을 응원한다.



#구준엽 #서희원 #순애보 #슬픔 #애도

뉴스를 보고 갑자기 쓴 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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