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Oct 12. 2022

전력질주~ 내가 이겼어!

와~ 가슴이 터져 죽는 줄 알았네!

시작은 여유로웠다. 설거지도 끝내고, 청소기도 완벽하게 돌리고, 세탁기에 얼마 안 되는 세탁물은 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딱 맞춰 예약까지 마쳤다. 엘리베이터도 미리 콜 해서 현관문 열고 나갔을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습니다" 나를 맞이하는 경쾌한 안내양의  목소리. 1층 출입문을 열고 맞이하는 싸한 아침 공기는 상쾌하게 나의 기분을 한층 더 가볍게 해 주었다. 편안한 발걸음으로 이렇게 35분 아침 산보를 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음! 이 여유 참 좋다.


꽤 걸었다.

지금 정확하게 몇 시지? 가볍게 꺼내 든 핸드폰에 메시지가 뜬다. 아차 까먹었다. 오늘 우체국에서 반품 물건 회수한다고 했지! 우리 큰아들이 포장까지 마치고 등교하면서 꼭 아침에 문 앞에 내놓아달라 당부했는데, 까먹었다. 돌아가 말아? 되돌아가 반품 물건 처리하고, 버스 타고 출근하자.


부랴부랴 뛰다 걷다 엘리베이터 앞! 뭐야 20층에서 내려오고 있다. 시간이 애매해진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가볍게 바람처럼 겨우 겨우  7층까지 뛰어올랐다.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내려오는 중 14층! 타는 사람이 많나보다. 어쩌지?


그냥 걸어 올라가자. 9층 10층 11층쯤 되자 다리가 후둘거리고 숨이 턱턱 차오른다. 후회가 밀려온다. 계단 손잡이를 잡고, 18층까지 죽을힘을 다해 올랐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 꾹 눌러 놓고, 집안으로 총알처럼 달려들어가 반품 물건 들고 나와 문 앞에 휙 집어던지고 풀린 다리 부여잡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헥헥 와! 죽을 맛이다.


버스 도착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이러다 아차 하면 놓칠 것 같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죽을힘을 다해 뛴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빨간색, 버스는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있고, 차들을 쉴 새 없이 지나간다. 무단횡단도 불가하다. 신호 바뀌기가 무섭게 버스를 향해 내달렸건만, 아~ 이 아저씨 나를 봤는지 못 봤는지 무정하게 부릉~하고 떠나버린다. 이 버스 놓치면 완전 지각이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저 버스를 따라잡아야 한다. 


한정거장. 거리는 얼마안된다. 다음 정거장은 초등학교 앞. 버스는 두번의 건널목 신호를 지나야 한다.


번개처럼 도로 옆 공원을 숨 가쁘게 가로질러 내달린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저 차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한다. 택시 타도 지각일 터. 택시도 이 시간엔 안다니는 동네다.

미친 듯이 긴 머리 휘날리며 공원 숲을 가로지른다. 다음 정류장까지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저 버스는 두 번의 신호를 지나야 하는데, 그 신호가 제법 길기에 재수 있게 버스가 두 번의 신호에 다 걸리기만 한다면 승산 있는 게임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싸한 공기는 목구멍까지 알싸하게 만든다. 이 뭐하는 짓인가?  버스는 신호대기후 좌회전 신호를 받았고, 그대로 직진 신호를 받으면 난 또 방금 전 상황에 놓이게 될 터이다. 공원 둘레 나무 울타리를 비집고 숨가프게 학교 앞 사거리에 마주한 순간 딱 기가 막히게 35초 보행자 신호가 열린다. 버스는 정거장 바로 직전에 신호대기 중이다.


와! 내가 이겼다.

나를 약 올리듯 붕 떠나갔던 저 버스를 내가 따라잡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거친 숨소리로 헥헥거리며 남은 이십몇 초가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안도의 큰 숨을 몇 차례 들이킨다.


야! 해냈다.

어찌나 뛰었던지 버스를 타고 의자에 앉아서도 그 거친 숨소리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멈춰 서니 이제야 제정신이 들고, 이마에 땀방울 등 뒤에서도 뭔가 또르르 굴러내리는 듯한 착각이 인다.  


너무 더워 사람들 눈을 피해 살짝 창문을 연다.

행여 저 기사 양반이 날 알아볼까 창피해 마스크를 잔뜩 올려 정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창밖 공기로 시원스레 바람 마사지한다. 아! 시원타~


거친 숨소리도 잦아들고, 얼굴에 미소가 핀다.

"아! 나 아직 죽지 않았어!"ㅎㅎ


겨우 겨우 안정을 찾은 나! 가볍게 이 아침의 미친 달리기는 잊은 듯 우아하게 머릿결 뒤로 한번 쓰윽 쓸어내면서 목적지에서 내린다. 그러면서 속으로 속삭인다.

  "아자씨? 저 봤죠? 지금껏 버스하고 달리기 해서 이긴 사람 보셨슈? ㅋㅋㅋ"


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오늘 아침! 제법 쌀쌀하죠?"

"네!"

'쌀쌀하긴요! 아직도 제 이마와 머릿속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등짝은 축축이 젖었답니다요.'


오늘도 기적 같은 아침을 만든 나, 아이들에게 엄마는 기적의 마라토너라고 뻥 좀 쳐야겠다. 너네들 버스 하고, 달리기 해서 이긴 사람 봤냐? 고, 이 엄마가 세상에 몇 안될 그런 사람이라고! ㅎㅎㅎ


울 제비아빠에겐 비밀이다.

건수만 줬다 하면, ooo님으로 빙의한다. 


너는.....!! 그러니까.....!! 앞으로!!

애들이나 어른이나  남이하는 소리는 좋은 말도 다~ 잔소리로 들린다.


잔소리하는 사람치고, 틀린말 하는 사람 없는데, 왜 그렇게 듣기 싫을까? 참 사람심리가 이상하다. ㅎㅎ

설마 나만??ㅋㅋ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이 공원을 가로질러 질주본능을 발휘한.....늘봄 쓰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도서관에 웬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