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 큰아들이랑 사골국물 넉넉히 넣어 만두국을 끓여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랫만에 먹으니, 또 이렇게 눈내리는 겨울에 먹으니, 뜨근한 국물이 온몸을 살살 녹여주어 더없이 행복하고 맛난 점심이었다. 비비고 사골곰탕에 비비고 왕만두가 조화를 이루니, 라면보다도 쉬운 만두국 한그릇이었다. 진한 감칠맛이 도는 조미료맛. 가끔은 그 맛이 사람을 기분좋게 해준다. ㅎㅎ
뜨끈뜩끈한 만두국 한그릇
날이 포근하니, 오는 족족 눈이 쌓이지 않고 녹아내렸다. 눈이 소복이 쌓이면 울 꼬맹이랑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오늘 날씨는 그 기쁨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쉽다.
두 장의 사진과 함께 오래전 추억이 배달됐다. 바로 카카오스토리를 통해서 말이다. 아이들 어렸을때 사진첩 삼아 그 예쁜 모습을 담아두곤 했는데, 눈오는 날, 또 눈이 왔던 그 옛날의 추억을 선물처럼 받으니 마음이 남다르다. 저렇게 좋았던 눈오는 날의 추억! 이제 눈이 와도 엄마따라 놀러나갈 그 어린 아들들이 없다. 엄마가 나가자 해도 귀찮아 할 판이다.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
2013년 12월 13일 눈이 와서 즐거운 우리들
2013년 12월 13일, 2020년 12월 13일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왔다. 창밖으로 소복이 쌓인 눈에 강아지마냥 즐거웠던 우리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새삼스런 우리들 모습에 저렇게 즐거웠던 기억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구나 했다. 꼬맹이랑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던 순간도 이젠 추억속에 잠들어있다. 해가 갈수록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설레임 가득한 기대감은 줄어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나간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은 날이 갈수록 진해진다.
2020년 12월 13일 첫눈온 날 꼬맹이와 엄마의 작품
집밖에서 주방 환풍기를 타고 드나드는 바람소리가 괴상스러울만큼 세다. 아마 내일 아침은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 것 같다. 녹아든 눈발에 길이 빙판이 될 것 같다. 출근길이 상당히 곤란할 것도 같다. ㅎㅎ
오늘은 오랫만에 부대찌개를 끓여봤다. 말이 부대찌개지 사실 햄만 한캔 넣어 아이들에게 부대찌개라 눈속임하는 김치찌개가 더 맞을 것이다. 소세지도 없고, 고기한점도 없어 두부와 어묵 그리고 햄과 김치를 넣고 사골국물팩으로 육수를 대신 했다. 대파, 양파, 마늘 듬뿍 넣어 보글보글 오래도록 끓였다.
아이들은 햄만 속속 맛있다며 골라먹었다. 국물에서 제법 부대찌개 맛이 난단다. 아마도 사골육수팩 덕분인가 보다.
"애들아! 양심이 있어야지. 김치랑 두부랑 어묵도 골고루 먹어줘야 얘들이 좀 덜 서운할 거 아냐? 알았어?"
그릇 가득 김치와 두부를 떠서 담아줬더니, 군소리 없이 제 몫을 다들 잘 먹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이 지역 부대찌개맛 근처에는 못가도, 소세지 하나 안들어가도, 들어간 재료 별로 없어도 부대찌개라 우기는 엄마에게 반기 못들고 애들이 제법 맛나게 먹어줘서 고맙다.
매일 매일 먹는 사람에겐 그 나물에 그 밥 일지라도,
밥상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가족들의 입맛을 고려하고 건강을 생각해 만들어내는 정성과 고민의 결과다. 매일 매일 두, 세끼를 만들어내는 엄마는 식당 아줌마보다 아마 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