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4
사람은 각자의 운명에 따라 태어나고, 성장합니다. 그리고 세포가 노화되면 찾아오는 질병 혹은 사고의 영향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는 당연한 순리(順理)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렇게 살다 가도록 프로그래밍이 돼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낯선 소식이 아닙니다. 유명인, 일반인 모두 자살에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한 나라 수도의 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라,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상당히 많은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조물주가 실제 존재했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조물주조차 놀랄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서는 매년 국민의 사망원인을 조사해 알리고 있는데, 상당히 오랜 기간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상위권에 '고의적 자해'라는 항목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암, 뇌질환, 심장질환이 주된 사망원인이었습니다. 이들 질병은 식습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질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폐렴을 포함한 4개의 원인 모두 질병에 해당합니다. 건강에 아무리 관심을 기울이더라도 피하기 어려운 게 질병이죠.
하지만 질병 외적인 요인 중에서는 자살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10대 이상에서 질병이라는 조건을 들어내면 자살로 생명을 끊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순위에는 조금씩 변동이 있지만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고의적 자해는 지속적으로 사망원인 5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는 하루 평균 37.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9년 1만 5000명을 넘어섰던 자살자 수는 차츰 감소하고 있었지만, 2017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이 자살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치욕스럽게도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랜 기간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죠. OECD에서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은 2019년 평균인 11.3명(표준인구 10만 명당 자살하는 인구)의 2배가 넘는 24.6명을 기록했습니다. 실로 엄청난 수치입니다.
뒤이어 위치한 국가는 리투아니아입니다. 구소련 붕괴 후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다 2000대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여러 측면에서 아직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 한국이 살기엔 더 좋은 나라임에도 자살률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은 건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7년을 제외하고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줄곧 1위는 한국이었습니다. 이는 외적인, 수치적인 발전은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다양한 이유가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거겠지만, 이 중 일부는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겁니다.
UN, OCED에서 매년 발표되는 자료를 토대로 국내 관련 기관들은 행복지수를 산출·비교하는데, 이 결과에서도 한국은 만년 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행복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합니다. 취업난, 빈부격차 등이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죠. 자본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기에 어쩌면 당연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물질적인 이유와 더불어 다양한 집단 간 갈등이나 스트레스 등 내적인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심리적인 요인도 행복지수 선정에 큰 지분을 차지합니다.
21세기 현대인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행복의 조건은 뭘까요? 각자의 기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사람의 근본에서 그 조건을 찾는다면 '온기'일 겁니다.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을 표현한 '사람 인(人)'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소통하며 거친 세상을 이겨나가야만 합니다. 인류의 오랜 조상들이 그러했고, 미래 인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적인 상황에 놓인 하나의 인격체는 그만큼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개체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어떤가요? 이웃 간의 소통은 실종됐고, 점차 온라인으로 귀의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담소를 나누기보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논쟁을 벌이는 이가 많아졌고요.
'사람의 온기'가 점차 사라지면서 '군중 속의 고독'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빚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어 지는데 현실보다 가상세계에서 도피처를 찾기 쉽습니다.
그곳에 몰입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공격성, 혐오성, 비관주의가 판치는 그곳에서 과연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마음 따듯해지는 게시물이나 뉴스를 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사람이 작성한 글이지만 일부 글들은 도저히 사람이 남겼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합니다. 특정 집단이나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증오하고, 협박합니다. 공격적인 태도가 팽배하며, 누군가를 현혹시키려 하기도 합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주장을 정답이라 여기며 강하게 관철시키려 합니다.
그 안에서 과연 진실한 의미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안에 답이 없다는 걸 알 텐데 말이죠.
경제 구조의 부조리, 현실적인 이유가 자살로 이끌 수도 있지만 온라인이 가져다주는 비인간적인 영향력 역시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영향력은 '반복된 노출'로 인해 더욱 심각한 심리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실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