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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Apr 11. 2021

색안경 공장을 폐쇄하자

악플을 해결하기 위한 사견 - 언론

종이신문이 예전만큼 많은 손을 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언론은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급변하는 사회인만큼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변화되는 양상을 시시각각 보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제기능을 하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대중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확성기 역할도 담당해야 합니다.


짙어진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프레임


제가 생각하는 언론의 본질은 '순수한 정보'에 있습니다. 어떠한 '의도'가 포함되지 않은 깨끗한 '사실'만을 전달해야만 하죠. 매일, 실시간으로 수많은 기사를 접하고 있지만 기사는 결코 가벼운 글이 아닙니다. 구성과 작성, 송고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매우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대 언론은 상당히 변질됐습니다. 그저 색안경 공장으로써의 기능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론지를 통해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기사들은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선봉장이 되고 있습니다.

각종 프레임이 난무하면 사회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애당초 대중을 특정한 의도대로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선전 도구인 만큼 부정적으로 활용되는 프레임들은 각종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죠. 악플 역시 이 도구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예 뉴스는 외적 매력만을 과도하게 집중하는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강조했지만 연예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외모란 그저 하나의 구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각각의 고유 매력이나 노력이 숭고하게 평가받는 사회가 건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외모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진 데에 언론이 기여한 거죠.


특히 온라인에서는 기사에 포함하는 게 맞는지 우려스러운 표현들을 서슴없이 차용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글의 핵심이라 부르는 제목에서부터 몸매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이는 잘못된 성의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프레임에 반복 노출된 사람은 연예인을 바라볼 때 얼굴과 몸매를 최우선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게 되죠. 색안경이 크면 클수록 해당 연예인의 본질보단 외모만을 두고 갑론을박하게 됩니다. 연예인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악플들이 외모에 관한 것입니다. 결코 지금의 보도 행태와 무관하다 할 수 없겠죠.


그렇기에 온라인 환경을 정화하기 위해선 언론의 역할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어쩌면 언론이 가장 앞서서야 합니다. 악플을 해결하기 위해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겠지만 선결 과제는 잘못된 보도 방식을 과감히 혁신하는 겁니다.


오로지 외모에만 포커싱을 맞추는 단발성 연예 기사와 그에 따른 어뷰징. 일부는 주장합니다. 누리꾼의 유입을 통해 수입을 얻는 현 시장 구조상 그들을 유혹하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거짓은 아닙니다. 실제로 외모를 강조하는 것뿐 아니라 해당 연예인의 사적인 부분을 다룰수록 방문자 유입이 폭증합니다. 연예인의 치부, 가족, 집안 등등.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자극시킬 수 있는 제목이 더해진다면 클릭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유형의 기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언론 스스로가 이렇게 되도록 유도한 결과입니다.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이 구조를 깨버려야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SNS상 댓글을 맹목적으로 기사 하단에 붙이는 방식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댓글이 해당 사안을 대표하는 의견으로 비칠 우려가 있으니까요.


종이 신문에서는 댓글이 기사 하단에 붙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기사에 타인의 의견이 개입되는 경우는 '통계'나 전문가의 분석 정도로 국한됩니다. 댓글을 내용에 포함시키는 건 인터넷 매체가 폭증하고 포털과 그 안의 검색어를 통한 기사 유입이 일반화되면서 생겨난 겁니다.


이는 제가 기자로 근무하던 시절 즈음 생겨난 현상인데 한 매체가 검색어 상단에 노출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댓글을 활용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 매체는 댓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꾸며 특정 검색어를 과도하게 기사에 삽입했습니다. 그렇게 송고된 기사는 검색어 상단에 장시간 노출됐습니다. 이때부터 댓글 붙여 넣기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이후 포털 사이트에서 어뷰징을 규제하고 노출 알고리즘을 변경하는 등 조치를 취하면서 댓글 붙여 넣기는 사라졌지만 그 영향에서인지 아직도 연예·스포츠 기사 하단에 댓글 형태의 내용을 첨가하는 언론사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 댓글들 중에는 실제 게시된 걸 옮겨 적은 게 아니라 기자가 임의로 꾸민 것들도 존재합니다.


언론사는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사실 그대로, 혹은 이를 판단하기에 필요한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이에 반응은 독자가 감당해야 할 영역입니다.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가적인 요소를 첨가시키는 건 기사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일 뿐 아니라 사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레기'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


얼마 전 제 시선을 끈 판결이 있었습니다.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 기자를 비하하는 의미의 신조어)'라는 댓글을 써 모욕죄로 고소된 누리꾼이 대법원 판결로 무죄를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표현 자체가 모욕적인 건 맞지만 기사와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는 걸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는 기레기가 일반적으로 써도 무방할 만큼 현행 언론 보도 행태가 붕괴됐음을 시사합니다. 온라인을 필두로 무너진 신뢰의 결과라 할 수 있죠. 앞서 나열한 것들은 기자 시절 제가 느꼈던 회의감과 반성도 포함되지만, 이 시대에 언론의 대표적 과제기도 합니다. 지금의 언론인들은 이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나락으로 떨어진 언론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슈를 주요시하는 보도 방식,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을 타파해야 합니다. 연예·스포츠 심지어 정치·사회분야에서도 짙어진 황색 저널리즘은 건강한 사회 발전에 그다지 도움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프레임들만 걷어내도 한결 청정한 환경을 맞을 테지만 여기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언론사는 오염된 가상세계 복구를 위해 적극적인 보도 공세를 이어가야 합니다. 악플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인 만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 목소리가 윗선에 전달될 때까지 말이죠.


악플과 관련된 문제가 터지면 많은 기사가 쏟아집니다. 그중에는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슈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악플이라는 조건을 포함한 순간 자극적인 기사 만들기가 매우 수월해지기 때문이죠. 대중의 주목도가 큰 악플 이슈면 제목부터 'xxx'와 같은 제목이 등장합니다. 비속어를 제목이라는 최전선에 배치해 독자를 유혹하는 거죠. 심지어 '우리까이'(다른 언론사의 기사 등을 일부만 변경해 베껴 쓰는 행위의 은어)로 포털은 'xxx'로 도배됩니다.


가벼이 여길 사회문제는 없지만 악플 문제만큼은 결코 가볍게 취급되면 안 됩니다. 이런 기사들은 상대방을 하대하는 악플러들을 고무하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못할 바에는 저런 식의 기사는 작성하지 않으니만 못한 겁니다.


이런 보도 행태가 비일비재하고, 폭발적으로 어뷰징 기사가 생산되다 보니 다른 문제보다 악플과 관련한 실질적인 기사는 묻히는 경우가 잦습니다. 산발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기에 조성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집니다. 응집된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라도 이 부분은 개선해야 마땅합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 등과 같은 국가적인 이슈에서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합동 취재'를 통해 강하게 압박할 필요도 있습니다. 언론 모두가 하나 된 움직임으로 악플 문제를 다룬다면 해결을 위한 긍정적 분위기가 손쉽게 조성될 수 있습니다.


언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부조리한 존재에 짓눌려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작은 목소리를 크게 확대시켜주는 확성기로써의 역할, 언론사가 존재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입니다. 


머지않아 시작될 악플과의 대대적인 전쟁에 앞서 언론사가 포문을 열기를 희망합니다. 대부분은 사건을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지만, 일부 언론사는 악플 문제가 불거지면 기획기사 형태로 심층 보도를 하기도 합니다. 특정 사건과 기사가 맞물리면 큰 흐름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만약 영향력이 있는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악플 문제 해결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캠페인이 펼쳐진다면 큰 힘을 더할 수 있을 겁니다. 정반대로 언론사들이 손 모아 악플러를 저격하는 글들을 정성스레 사회에 내놓는다면 대중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답답한 현 상황에 물꼬를 터주는 거죠.


언론은 부정을 감시하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여야 합니다. 사익보다는 사명을 우선에 둬야 합니다. 언론인은 그만큼 고된 업입니다. 그럼에도 직업의식 가득한 언론인들은 아직까지 많다고 믿습니다. 뜻있는 언론인들이 소속 불문하고 전선에 나서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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