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 셋이 요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예전엔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로 웃고 떠들었는데 요즘은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갱년기 증상’으로 흘러간다.
한 친구는 난소종양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고, 한 친구는 얼마 전 완경(폐경)을 맞았다.
나는 아직 폐경은 오지 않았지만 갱년기의 문턱을 넘은 지는 꽤 됐다.
우리 셋은 서로의 몸이 보내는 낯선 신호들을 털어놓는다.
한 친구는 어느 날 커피를 마시다 이상한 통증을 느꼈다.
입천장과 혀끝이 마치 불붙은 듯 아팠다고 했다.
“커피가 너무 뜨거웠나?”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증상은 계속됐다.
치과에도, 내과에도 가봤지만 “정상이에요”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부인과 정기검진에서야 알게 됐다.
이게 바로 갱년기의 증상 중 하나인 ‘버닝 마우스 증후군’이라는 것을.
이건 내 이야기다.
어느 날부터인가 팔꿈치와 손끝이 간헐적으로 찌릿했다.
컴퓨터를 오래 해서 그런가 싶어 털어봐도 여전했다. 병원에서는 X-ray 상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다.
“혈액순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됐다. 이것도 결국 호르몬 변화로 인한 ‘신경 민감증’의 일종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찌릿한 감각이 올 때마다 ‘그래, 내 몸이 새로운 회로를 정비 중이구나’ 하고 웃어넘기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요즘 냉장고를 열고 한참 서 있다.
“내가 왜 열었지?”
문득 기억이 하얘지고 손에 들린 전화기를 찾느라 방안을 뒤지는 일도 잦아졌다.
심지어 한 번은 친구와의 통화 중에 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 그... 우리 집 큰 딸!”이라 불렀다고 한다.
겁이 나서 병원에 가 조기치매 검사까지 받았지만 다행히 결과는 정상이었다.
“이건 갱년기의 흔한 증상이에요. 뇌 안개(Brain Fog)라고 합니다.”라고 의사가 말했다.
호르몬 변화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이 잠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현상이라고 했다.
이렇듯 갱년기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입안이 불타고, 누군가는 손끝이 찌릿하며, 누군가는 기억의 구름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럴 때 가장 무서운 건 ‘나만 그런가?’ 하는 외로움이다.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데 나만 혼자 다른 세계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
하지만 혼자 고민하면 증상보다 외로움이 더 커진다.
그 외로움이 오히려 증상을 키우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래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기로 했다. 그게 우리가 내린 ‘갱년기 처방전’이다.
“마치 내 혀가 말이지~ ‘나도 좀 쉬자’고 파업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요즘은 뜨거운 커피 대신 미지근한 차를 마셔.
자극적인 건 피하고 담백한 음식 위주로 먹으니까 입은 여전히 아프지만 몸은 오히려 건강해진 것 같아.”
그 말에 우리는 조용히 웃는다.
‘혀의 파업’이라니, 참 재밌는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파업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어쩌면 몸이 보내는 “이제 좀 쉬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메모지를 항상 곁에 두고 있어. 깜빡거리는 나를 탓하기보단, 그냥 뇌를 좀 쉬게 해 주려고.
이렇게 쉬다 보면, 언젠가 짙은 안개가 걷히겠지.”
그 말이 괜히 위로가 되었다. 우린 모두 너무 오랫동안 뇌를 혹사시켰으니까 이제 좀 쉬게 해 줘도 좋지 않을까?
갱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도 혼자 견딜 필요는 없다.
우리의 한 달에 한 번의 신나는 수다, 한 줄의 메모, 한 잔의 미지근한 차, 그리고 잠시 멈춰 서는 시간.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시기를 통과하는 방식이다.
증상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그 마음이 누군가의 공감으로 이어질 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치유되는 걸 느낀다.
혹시라도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당신! 절대 혼자 끙끙 앓지 말기를 바란다.
얘기할 사람이 없다면 이곳 브런치에라도 마음껏 쏟아놓자.
당신의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가 “어머! 나도 그래요”라며 따뜻하게 웃어줄 것이다.
그 공감의 한 문장이 갱년기로 힘든 당신의 오늘을 버티게 해 줄지도 모른다.
- 다음 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