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일찍 들어버린 딸

by JIPPIL HAN

먼저 발행된 '그래도 춤은 계속된다'의 주인공인 둘째 딸 말고 나에게는 소중한 딸이 한 명 더 있다.

이 번에는 그 기특한 첫째 딸에 대해 기록해보려 한다.




스물일곱.. 나는 다소 어린 나이(그 당시엔 적령기이긴 했지만)에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의 선배와 결혼을 했다.

그 사람을 너무 사랑했다기보다는 그저 같이 있는 게 편했고,

좁은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곱 식구가 바글대는 지긋지긋한 우리 집에서 나오기 위한 목적이 컸다.


직장을 다녔던 나는 2년간 일하면서 정신없이 신혼을 보내고 정해진 수순대로 서른에 첫째 아이를 낳았다.

첫째 아이라 나름 태교도 잘했고 음식도 가려먹으며 스트레스도 안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는 이상하리만큼 예민하고 까칠함 그 자체였다.


특히 가장 힘든 것은 살인적인 잠투정(가히 살인적이라 얘기할 만한 것)이었다.

잠이 오기 시작하면 칭얼거리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집이 떠나가라 자지러지게 울었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해서 겨우 잠을 재워놓으면 10분도 안 돼서 화들짝 깨어 울어재끼기 일쑤였다.


그 당시 나는 잠을 못 자서 얼굴이 항상 누렇게 떠 있었으며 아이를 놓고 화장실마저도 갈 수가 없어서 아이를 안고 가야 하는 지독한 육아 스트레스를 겪었다.


백일이면 없어진다던 잠투정은 백일이 지나고 돌이 지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아이가 왜 그러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이유를 몰라 그저 안고 달래고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더니 아이가 만 3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아이는 마치 "그동안 엄마 미안했어.. 내가 너무 심했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거짓말처럼 온순해졌고 그때부터 나의 행복 비타민, 나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존재로 변신했다.

지금도 힘들 때 그때 찍어놓은 비디오를 꺼내보면 스트레스가 저절로 해소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 해 우리 집 문제의?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를 출산해 입원 중인 나에게 외할머니 손을 잡고 온 큰 딸은 저 멀리부터 달려와 내 품에 안겼고 한참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인형보다도 작은 동생을 신기한 듯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손을 붙잡고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쉬어야 해.." 하고 데리고 가려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몇 발짝 가다가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애달파 눈물이 났다.

아이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엄마는 자기만의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둘째 아이의 탈모 이후 우리 부부의 모든 것은 둘째에게 포커싱이 됐고, 큰 아이는 혼자 크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방치 아닌 방치가 되고 있었다.


주말마다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느라 큰 아이와는 놀아주지도 못했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투정 부리는 일이 없었고 하루 종일 힘들었을 엄마를 꼭 안아주는 따뜻한 아이였다.


아이는 스스로 철이 들어버렸던 것 같다.

유치원 안 간다고 떼를 쓴 적도 없었고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 엄마들에게까지 저런 딸을 둔 나를 부러워하게 하는 착한 아이였다.

공부 역시 스스로 알아서 잘했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 덕에 우리는 아픈 둘째에게 집중할 수도 있었고 워킹맘도 계속할 수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