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어 전공자로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줄곧 일본 관련 업무를 해왔다.
일본 영업은 물론이고, 무역업무, 통/번역도 맡아했고, 한때는 삼*경제연구소에서 일본파트의 전자자료를 모아 발표해 주는 일 등을 해 온 나름 일본통이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참 워커홀릭일 때는 집에서도 일본에서 오는 전화를 받아야 했고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일본어가 상시 노출되어 있었다.
내가 "もしもし、韓です(여보세요, 한입니다) " 하면
초등학생인 큰 딸이 귀엽게 "모. 시. 모. 시~ 한데스"하고 따라 하곤 했다.
호기심이 생긴 딸은 가끔 사물을 가리키며
"엄마 이건 일본말로 뭐야? 그럼 안녕하세요는? 감사합니다는?" 하며 물어보는 게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간단한 일본어를 가르쳐 주고 둘이 더듬더듬 회화를 주고받는 게 일상이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일본노래나 드라마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드라마를 구할 수가 없어서 일본에 있는 친구들이 비디오로 녹화해서 보내주곤 했었다.)
그 영향으로 큰 딸도 웬만한 일본배우를 알아보고 노래도 어릴 때부터 흥얼거리곤 했다.
부부 둘 다 바쁜 관계로 해외여행도 오사카나 후쿠오카 같은 가까운 일본만 주로 다녔다.
일본에 가보면 둘째 아이는 그저 먹고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큰 아이는 일어로 쓰인 간판을 소리 내서 읽어본다거나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본다던가 하며 지적 호기심을 드러내곤 했다.
같은 배 속에서 나온 두 딸이 어찌 저렇게 관심사가 틀릴까 생각하면 그것도 참 신기방기 한 일이다.
아이는 아무런 문제 없이 초등학교 중학교 학업을 이어나갔다.
교우관계는 물론이고 학업성적도 좋아서 수학, 영어 정도 학원만 다니면서 별문제 없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였다.
부모가 공부하라고 말해 본 적이 없는데도 통지표에는 항상 선생님의 칭찬으로 가득했고, 우리 부부가 둘째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라 그저 그런 딸을 보면서 고맙고 대견한 마음뿐이었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초/중학교 9년 내내 아이의 학교를 가 본 적은 입학식과 졸업식 때뿐인 것 같다.
담임 선생님 얼굴도 졸업식날 '아~ 저분이 담임선생님이시구나' 하고 확인하면서 '난 엄마도 아니다'하고 반성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언제나처럼 우리는 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알아서 잘해주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도 우리에게 힘든 점을 얘기한 적 없던 딸이 어느 날 나에게 'SOS'를 요청해 왔다.
그때까지 아등바등하면서 지켜오던 큰 딸의 자립심은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