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by JIPPIL HAN

계획했던 곳에서 점심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오늘에서야 드디어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으로 기분이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다음은 후식으로 생각해 놓은 시즈오카의 명물 '와사비 아이스크림'이다.

'와사비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서 와사비를 아이스크림과 섞어 만든 것은 아니니 놀랄 것은 없다.

바닐라 소프트 아이스크림 옆에 생와사비를 살짜 얹어주는 것이다.

조합이 이상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잘 어울려서 신기했다.

맛은 달콤 매콤 찡~한 맛이라고 해두자.

스크린샷_25-9-2025_204226_.jpeg 생와사비를 즉석에서 갈아 아이스크림에 올려준다 500엔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은 후 료칸 체크인 시간 전까지 아름다운 슈젠지 동네를 구경하기로 했다.

그림5.png 슈젠지 마을의 상징인 빨간 다리

조용한 슈젠지 마을의 상징인 빨간 다리와 이 지역 핫플레이스인 대나무오솔길을 걸었다.

그림7.png 슈젠지의 대나무오솔길과 평상에 누워서 찍은 대나무숲 사진

오솔길을 걷다가 보니 둥근 대나무 평상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누워서 하늘로 뻗은 대나무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혼자서 평상에 눕기가 조금 쑥스러웠지만 에라 모르겠다 나도 대짜로 누워서 대나무숲 사진 한 장을 건졌다.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것이 너무나 평화롭고 내 안의 복잡한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다가도 일이 들어오면 어디서라도 메일을 열어보기 위해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지만,

오늘은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냥 지금을 즐기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한가함을 즐긴 적이 있던가.

누구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 곳에서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지금, 대나무숲에 누워있는 내가 너무 평화롭고 행복해서 스르르 잠이 들뻔했다.


개운해진 기분으로 '이제 슬슬 료칸 체크인을 하러 가볼까' 하고 일어났다.

그때였다. 왠지 어딘가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오 마이갓! 지갑이 없다.

일본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본 동전별로 구분해서 넣을 수 있는 '일본여행용 가죽지갑'까지 장만해서 왔다.

그런데 그 지갑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가방을 다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다.

일본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을 리는 없고 분명 내가 칠칠치 못하게 어디에 흘린 게 틀림없다.


'소바집'에서 계산을 하고 나왔고 아이스크림집에서도 계산을 했으니 그때까지는 지갑이 있었다는 건데...

기억을 더듬으며 지나왔던 모든 길을 다시 돌아다녔다. 땅만 쳐다보며 지갑이 떨어진 곳이 없나 살폈다.

그러나 지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지갑에는 10,000엔짜리 지폐 1장과 1천엔 짜리 지폐 2장 정도, 동전 몇 개와 체크카드 1장만 들어있었고

내 신분증은 없었다.

천만다행인 건 당장 쓸 돈만 지갑에 넣어놓고, 나머지 큰돈은 봉투에 넣어 가방 안 깊숙이 넣어뒀기 때문에 큰돈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한국에서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던 지갑을 일본까지 와서 잃어버리다니..

너무 분위기에 젖었던 걸까? 평상에서 느꼈던 마음의 평화가 한순간에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푸드트럭에서 커피 한잔을 사서 잠시 벤치에 앉았다.

숨을 고르고 생각을 좀 해야겠다.


지갑을 찾으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신분증이 지갑에 없다.

고로 나는 지갑을 찾을 수 없다.

지갑에 12만 원가량의 금액이 아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래 깨끗이 잊어버리자! 앞으로 남은 여행이 길다.

이 일만 신경 쓰다가는 남은 여행이 엉망이 될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새 지갑을 사기 위해 기프트판매점으로 발을 옮겼다.

기프트판매점에서 귀여운 파우치 1개와 동전지갑을 발견해 구매했다.

기프트숍에서 구매한 후지산 파우치와 동전지갑

후지산 모양의 파우치에는 지폐를 넣고 마네키네코 모양의 동전지갑에는 동전을 보관하기로 했다.


계산대에서 아주머니께 지갑 잃어버린 썰을 풀었더니 아주머니 曰.


"지갑 안에 신분증 없어요? 신분증만 있으면 일본에서는 지갑을 못 찾는 일은 거의 없어요~

지갑을 주워 본인이 갖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무조건 파출소에 갖다 주거든요"

신분증이 없다고 하니 너무 안타깝다고 하신다.


기프트숍을 나서면서 지갑분실 사건은 마음속에서 지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마 여권과 돈봉투를 따로 놓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찾고 나니 배가 고파온다.


터덜터덜 조금 걷다 보니 저 멀리 오늘 묵을 료칸의 웅장한 자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료칸을 혼자 방문한다는 생각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료칸.png 료칸 키쿠야의 모습


- 다음 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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