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칸에서 17년을 보상받다
산골마을의 오후는 너무나 고요했다.
가로등조차 드문 거리에 유난히 웅장한 건물이 홀로 서 있었다.
작은 성을 닮은 듯한 그 건물은 오늘 내가 묵을 료칸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외관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내부가 펼쳐졌다.
긴 복도와 이어지는 계단과 수수께끼 같은 문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길을 잘 잃는 나로서는 이곳에서 방을 찾아 헤매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묘한 불안이 스쳤다.
마치 오래된 일본 미스터리 소설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등장인물이 된 듯했다.
직원은 무릎을 꿇고 앉아 정중하게 내 방의 위치를 설명했다.
홀로 찾아온 손님은 나뿐인지 그의 말투와 눈빛은 한층 더 섬세하고 다정했다.
동네가 너무 외져 밤에 편의점이라도 가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료칸 내부에는 작은 연못과 휴게실, 자판기와 상점까지 마련되어 있어 굳이 세상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어 보였다.
방 문을 열자 단정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나를 맞았다.
방 한편에는 개별 히노키탕이 있었다. 혼자 쓰기에는 아까울 만큼 호사스러웠다.
창문을 열자 계곡 물소리가 깊게 스며들어왔다.
세상 모든 소음이 차단된 듯 맑은 물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순간 여기가 남의 나라, 남의 동네 어떤 연고도 없는 낯선 료칸이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와닿았다.
갑자기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본능적으로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음엔 함께 오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 ‘외로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료 맥주 자판기에서 맥주 한 컵을 따라 연못 앞 의자에 앉았다.
붉은빛의 붕어들이 무리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고르고,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차갑고 쌉쌀한 맛이 목을 타고 흐르자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이 오히려 자유처럼 다가왔다.
곧 눈꺼풀이 무거워져, 침대에 몸을 맡겼다.
알람 소리에 눈이 떠졌다. 저녁으로 신청해 둔 가이세키 정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기 전 잠시 주저했다.
연인과 가족으로 가득할 이 자리에서 나 혼자 이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직원은 그런 내 맘을 아는 듯 조용한 구석의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칸막이로 나뉘어 프라이빗하게 꾸며진 공간.
혼자서도 위축되지 않고 온전히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자리였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코스 요리는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자그마한 그릇에 담긴 전채요리, 향긋한 국물, 정갈한 사시미와 계절의 채소들, 작은 도쿠리에 담긴 사케는 한 모금만으로도 마음을 풀어주었고, 요리와 술이 조화로웠다.
나는 아주 천천히 음식을 음미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격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일과 아이들에 쫓기며 17년을 달려왔던 나, 한 번도 나에게 선물 같은 것을 해본 적 없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 이 낯선 료칸의 식당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수고했어. 이제는 너를 위해 살아도 괜찮아.”
나는 마치 작은 축제를 즐기듯이 디저트까지 맛있게 먹은 뒤 방으로 돌아왔다.
창밖 계곡 물소리는 여전히 고요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 밤, 외로움은 더 이상 허전함과 공허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가장 따뜻한 선물로 나에게 돌아와 있었다.
이제는 료칸의 하이라이트를 즐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다음 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