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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무개 Dec 12. 2024

윤탐 장편소설 『TRICK OR TRIP』 19화

2부 「비상구」 ④

   시간은 계속 흐른다. 사업은 착실히 수익을 냈고 나 역시 미흡하게나마 N처럼 건실한 청년 사업가의 이미지를 갖추려 노력했다. 걱정했던 연회장 사건의 여파는 우리에게 미치지 않았다. N은 포마드가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또 알 만한 사람들은 그를 모두 꺼려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타격은 없을 거라고 했다. 조용히 지나간 일을 굳이 들출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계속 일을 해나갔다. N은 점점 더 바빠져 외근이 눈에 띄게 잦았고, 나도 나름의 내조에 힘을 썼다.

   이듬해 N은 상의할 게 있다며 포니테일과 나를 불렀다. 그는 학교 밖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대출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자고 제안했다.

   “원하면 그렇게 해.” 내가 말했다.

   “잠깐만.” 포니테일이 제지하고 나섰다. “대출까지 지금 받아야 해?”

   “안 될 이유 있어?”

   포니테일은 사무실이야 학교와의 계약이 끝나가니 그래야겠지만 대출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했다. “투자금 안에서 일을 추진하는 게 안전하다고 봐.”

   “안정성에만 기댈 시점이 아니야. 위험을 좀 감수하더라도 도약해야 해.”

   “대출받아서 뭘 하고 싶은데?” 내가 물었다.

   포니테일은 이제야 관심을 가지냐는 힐난과 안도가 반반씩 섞인 눈초리로 나를 봤다.

   “말 그대로 사업 확장이지. 직원 늘리고 업무 영역도 늘리고. 업무 매뉴얼도 새로 정비해야할 거야.”

   “그러니까 대출이 아니라 투자를 받아야지. 주식을 더 발행하는 방법도 있고.”

   포니테일이 말했다. N은 현시점에서 받을 수 있는 투자는 이미 다 받았다고 했다. 곧 선약이 있던 포니테일은 끝까지 만류하다 자리를 떴다. 나는 일단 생각해 보자며 당분간 결정을 보류했다.

   며칠 뒤 오후 망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간만에 고향에 왔으니 술 한잔하자는 이야기였다. 그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몇 달 전부터 타지의 구청 공원녹지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내가 둘이서 만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검토하던 서류파일을 닫아서 책장에 꽂은 뒤, 같은 칸에 빽빽이 들어찬 서류파일을 손가락으로 드르륵 훑었다. N과 보낸 삼 년 가까이의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서류철처럼 빼곡한 나날이었고 그 이전의 일들을 까마득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 이 일은 온전히 N과의 사업일 뿐이었다. 적시타에게 가졌던 부채감은 거의 희미해져 있었다. 연회장에서 후배를 마주쳤을 때 느낀 불편한 마음도 그때 며칠뿐이었다.

   간만에 들른 학교 근처는 여전했다. 괜찮을 것 같던 마음이 금세 싱숭생숭해졌다. 나를 아는 녀석들은 모두 졸업했을 텐데도 어쩐지 떳떳치 못한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거리의 모든 건물들이 잊고 있던 죄의식을 굽어보는 기분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망원은 꼭 <텅텅비어>에서 봐야 한다고 우겼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나는 생맥주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망원은 약속시간보다 이십 분 늦게 도착했다.

   “미안. 집에 들렀다 오느라고 늦었어. 와, 여기 얼마만이냐.”

   망원이 자리에 앉으며 감탄하듯 말했다.

   “합격 축하한다. 부모님이 기뻐하시겠어.”

   “기뻐하신 건 진작이었지. 지금은 철밥통 걷어차고 나올까 봐 벌벌 떨고 계실걸.” 망원이 농담하듯 말했다. “뻑하면 전화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괜찮냐, 어렵게 들어갔는데 쉽게 때려치우면 안 된다, 취업난에 다행인 줄 알고 다녀라, 난리시라니까.”

   “일은 할 만해?”

   “전혀. 엄마아빠가 노심초사 할 만해.”

   사장이 생맥주와 감자튀김을 가져오자 망원은 생맥주 한 잔과 소시지를 추가 주문했다. 사장이 돌아간 뒤 망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 이름은 맘에 안 든다고 불평했다.

   “듣겠다야.”

   “텅텅비어. 왠지 애들 지갑에 저주 거는 거 같잖아. 돈 많이 써라, 지갑 텅텅 비워라.”

   “애들이 돈을 많이 써야 가게를 유지하지. 이 근처에 값싼 술집 얼마나 있다고.”

   “하긴, 여기 없어지면 애들이 손해지. 그래도 가게 이름이 좆같은 건 맞아.”

   “술집이 술이랑 안주만 맛있으면 됐지 이름까지 신경 써야 해?”

   “얼씨구. 네가 언제부터 가게에 그렇게 우호적이셨대?”

   “가게에 우호적인 게 아니라 너랑 언쟁하는 게 재밌는 거야.” 내가 웃었다.

   “하여간 쓸데없이 비꼰다니까.” 망원이 검지를 까딱이며 고개를 저었다.

   맥주와 감자튀김, 소시지 두 덩이가 나왔다. 망원이 기다렸다는 듯 수저통에 있던 가위를 들었다.

   “내가 할게.” 내가 말했다.

   “됐어. 적시타랑 연락은 해?”

   나는 망원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소시지를 자르는 데 열중했다. 잠시 가위가 삭둑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다 됐다. 먹자.” 망원이 가위를 내려놓고 소시지 접시를 내 쪽으로 밀었다. “적시타 모르게 사업 이어나갔다면서?”

   “먹으라고 부른 게 아닌 거 같은데.”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하고 맥주를 마셨다. 망원이 웃었다.

   “불편해? 다른 이야기할까?”

   “그럼 편하겠냐?”

   “그러게 걔한테 사업 재개한다고 얘기는 해 주지.”

   “적시타한테 들은 이야기 없어?”

   “걔가 말하겠니.”

   망원이 포크로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겹쳐 찍었다. 나는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잠시 고민하다 반쯤 빈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트림을 참은 뒤, 사업을 계속 이어나간 사정을 털어놨다. 처음에는 적시타에게 미안해서 말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말을 안 하니 마음이 더 불편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래. 미안해서 더 미안할 짓하는 게 사람이지. 걔 요즘 뭐하고 지내는지는 알아?”

   나는 모른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부모님 밑에서 일 배우고 있대. 이참에 부모님 업체를 확장시킬까 생각하더라. 걔도 은근 사업가 기질인가 봐.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는 그제야 소시지를 찍어서 먹었다. “근데 우리 중에 전공 살린 애는 한 명도 없네.”

   “대학이야 뭐, 공부하러 간 거지 취업하러 간 건 아니니까.” 망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포크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아, 너 비광 소식 들었어?”

   “갑자기? 기억 저편에 묻힌 이름인데.”

   “죽었대. 자살했다더라.”

   순간 망원의 말에서 어떤 아우라가 번져 나와 주변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두터운 시간감과 공간감이 얇은 껍질처럼 바스라지고 흩어지는 듯했다. 그도 확실히는 모른다고, 얼마 전에 다른 동기에게서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말끝에 닻이라도 달린 듯 무겁게 귀에 끌려왔다. 나는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갈 때까지.

   “언제 그랬대?”

   “자퇴하고 얼마 안 돼서.” 망원이 손으로 머리를 약간 헝클었다. “잘 모르겠어.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더라.”

   “나도 그래.”

   “이상했어. 나도 모르게 애석해하다가 불쑥 또 화가 나는 거야. 내가 애석해할 필요가 뭐가 있어?”

   “뭐, 안타까울 수 있지. 사람이 죽었다는데.” 나는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근데 까놓고 말해 봐? 뒈져도 싼 놈이었어.”

   “취했어?”

   “이거 먹고?” 나는 팔짱을 풀고 생맥주를 한 잔 더 시켰다. “걔가 한 짓이 있잖아. 네가 미안해할 건 없다, 그 얘기지.”

   “그렇지. 근데 가끔 걔의 죽음에 내 책임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살 만한가 보네. 어두운 망원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슬퍼하든 죽든 내게는 주변을 돌아보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목에 깁스를 한 사람마냥 고개도 못 돌리고 산 지 오래였다. 괜히 망원을 실컷 빈정거리고 싶었지만 금방 나온 맥주만 급하게 마셨다.

   “그러고 보니까 비광이랑 마지막으로 술 마신 것도 여기네.”

   내가 무심코 말했다.

   “아. 그날 별 일 없었어?” 망원은 처음 묻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날 그 개새,” 나는 말을 멈추고 공연히 맥주잔을 옆으로 살짝 밀었다. “됐어. 고인 모독이야.”

   “뭐야? 상상력만 자극하는 게 더 모독이야.”

   “아무 일 없었어. 그냥,” 하필 그 순간 비광이 만취해서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그냥, 학교에 친구가 나밖에 없다고. 응. 그랬네.”

   “뭐야.”

   망원이 말끝을 흐리다 몸을 살짝 떨었다. 나는 맥주를 몇 모금 더 마시고 티슈를 뽑아 입가를 닦았다. 만약 대학 동기들이 비광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 내 책임이 가장 크지 않을까. 호출벨을 누르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씨발. 출근하고 싶었다. 간절하게. 쉬고 있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지. 남은 맥주를 한꺼번에 들이켜자 망원이 안주도 함께 먹으라고 타박했다.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포니테일의 전화였다. 나는 잠시 화면을 보고 있다가 휴대폰을 엎어 두었다.

   “누구야? 여자친구?” 망원이 물었다.

   “아는 동생.”

   나는 딴청을 피우다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부재 중 전화 표시가 남아 있었다.

   “신경 쓰이는 거 같은데? 전화해 봐.”

   “취했냐?” 식어서 푸석푸석한 식감만 남은 감자튀김을 포크로 헤집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애야.”

   “음? 근데 왜 안 받아? 밀당하냐?”

   망원이 물을 한잔 마셨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적시타 블로그 접은 거 알아?” 그가 물었다.

   “왜 또 걔 얘기야?”

   “그럼 무슨 얘기를 해? 대학생활 돌아봐라, 우리 셋 말고 더 있나.”

   “인생을 존나 잘못 살았어. 안주가 온통 지뢰밭이야.”

   적시타의 블로그는 군대에서 들렀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취미로 반년마다 주제를 바꿔가며 공부하던 그는 당시 영미문학에 관한 포스팅을 꾸준히 올렸다. 나 역시 관심이 많던 분야라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포크너 등의 소설들을 심도 깊게 다룬 글들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었다. 하지만 갈수록 학술적인 내용에 질려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떠올린 기억들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사장이 소주를 가져다줬다. 소주병을 까서 따르자 망원이 소시지 한 조각을 내 포크로 찍어 내밀었다. 나는 그걸 건네받아 먹었다. 맛이 좋았다. 아주 좋았다. 혀를 감싸는 기름기 가득한 육즙에 신경을 집중했다.

   “우리 졸업여행 갔을 때 불꽃놀이 했던 거 기억나?” 망원이 물었다.

   “우리가? 폭죽 쏘고 했었나?”

   “스파클라, 등신아. 철사에 불붙이면 스파크 튀는 거.”

   “아아, 그랬지. 그건 왜?”

   “스파클라인지 폭죽인지도 모르는 애한테 이걸 왜 말하고 있냐.” 망원이 눈을 흘기며 맥주를 마셨다. “그날 네가 다른 것도 살까하는 거, 적시타가 스파클라만 샀잖아. 나중에 펜션에서 너 먼저 뻗고 우리끼리 잠깐 얘기했는데 걔가 그러더라. 자기는 폭죽 싫어한다고. 폭죽은 아무리 들고 쏴도 사람들이 공중에서 터지는 불꽃만 보지, 폭죽을 든 자신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그게 자기 인생이랑 너무 닮은 것 같아서 싫대.”

   나는 적시타가 관심에 목마른 어린아이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느낀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까고 있네. 학교에서 사업할 때 걔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데. 존경과 자랑의 대상이었어. 다들 불꽃뿐 아니라 적시타도 봤던 거야. 어릴 때부터 그래왔을걸? 안 봐도 뻔하지.”

   “그래? 그럼 너는 왜 사업만 가져가고 적시타는 안 데려갔는데?”

   할 말이 없었다.

   “연락이라도 해. 네가 그랬다고 걔가 잡아먹기라도 하냐? 너도 알잖아. 적시타가 너한테만큼은 아주 관대하다는 걸.”

   “그래서 못하는 거야. 걔한테나 나한테나 독이라고, 이제는.”

   “핑계 좋네. 사무실에 동료들도 있다며. 명함은 뽑았어? 적시타한테 맡기지 그래?”

   “있어. 진작 뽑았지.”

   “그래? 한번 보자.”

   “됐어. 뭔 명함이야.”

   망원이 잔을 들고 건배를 청했다. “아무튼 후회하지 말고 잘 생각해. 아직 안 늦었어.”

   우리는 시켜놓은 술만 다 마시고 헤어졌다. 술값은 내가 계산했다. 망원이 돈을 계좌이체하려 하기에 다음에 한턱내라며 집으로 보냈다. 혼자 지하철을 기다리다 휴대폰을 꺼냈다. 포니테일의 부재 중 전화 알림을 한참 보다가 밀어서 지웠다. N에게 전화를 걸었다. N이 생글생글한 목소리로 친구는 잘 만났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응. 네가 말한 거 있잖아, 사무실 이전이랑 사업 확장. 다 해 보자.”

   “그래. 잘 생각했어.”

   전화를 끊었다. 지하철이 쏜살같이 들어와 내 앞을 지나치더니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적시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학교의 다른 선후배, 동기들, 그리고 망원과도. 반죽을 비틀어 떼듯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다였다. 망원과의 만남 이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적어도 나의 태도에 한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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