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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Feb 06. 2022

물멕이다.

물, 두번째 이야기

‘물주기 3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농업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농사와 관련된 격언들을 알게 되고 그 말뜻을 곰곰히 되집어 보게 됩니다.

농업을 하지 않더라도 지난 오랜 기간 인간이, 아니 한국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그 오랜 역사의 잔재들을 알게 모르게 듣고 흘려보내며 살아가게 됩니다. 며칠전 음력으로 설을 지내고 여러 절기들을 보내는 것들도 양력보다는 음력이 자연의 변화에, 농업에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자연속의 일부인 우리 인간도 그 흐름에서 올곧이 홀로 일 수는 없겠지요.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특히 제대로 해낸다는 것은 건성건성이어서는 그 본질을 파악해 내기 어렵습니다. 제대로 알고 놔두는 것과 모르고 방치하는 것은 다른 일이겠지요. 식물을 키우다보면 식물이 어떻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물을 주고 물이 식물에게서 어떻게 뿌리로 흡수되고 줄기로 이동되어 잎으로 충전된 다음 아침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때 ‘광합성’작용을 해내는 지를 빙의된 것처럼 느껴봐야 합니다. 단순하지만 숭고한 이 작용들로 식물이 자라고 에너지를 나누게 됩니다. 세세한 작용기작에 대해서는 수많은 공생과 생명속 신비로움이 두꺼운 책들속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되어 있지만 우선 농부로서는 물을 제대로 주는 1차적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지금의 농업은 그렇게 일일히 세세히 작물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으며 키우기 힘들고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자동으로 물을 주는 관수시설들을 설치하여 한꺼번에 물을 주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하나의 것들이 어떤지를 알기 어렵게 됩니다.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럭저럭 키워야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키우는 것과 돈은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처음에 심어놓은 작은 어린 식물들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와도 같습니다. 대강대강 키워서는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로 합니다. 세세한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 잘 자란 놈들이 효자가 됩니다.’ 물론 요즘은 효라는 것을 바라지도 바래서도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강요된 그 무엇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일인 것이겠지요. 교감이 중요한 시대이지만 교감과 공감을 바라기도 어려운 어지럽고 복잡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기자신에 대한 성찰과 교감에서부터 가족, 가까운 사이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도 같은 과정입니다. 식물을 키우든 자식을 키우든…피곤함의 차이겠지만요.


많은 도시인들이 내 삶의 반려물로써 여러 동물들과 식물들을 키우고 사랑하고 이별을 애석해 하게 됩니다. 나의 정성과 그들의 반응이 교감하기 때문이겠죠. 어느 순간 우리는 나와의 교감, 피붙이나 부부의 공감보다는 피곤하지 않는 반응을 해주는 그 무엇에게 나의 관심과 사랑을 일방적으로 쏟는게 아닌가 합니다. 대화에서 오는 막막함,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그저 단순한 몸짓과 성장, 반응으로 보여주는 그 무엇들에 희석시키길 바라는 것이겠지요. 의미가 없는 것이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위안을 가져다 줍니다. 편안함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그나마 지탱해 줄 수있는 피안의 대상일 수도 있으니까요.     


영농의 궁극적 목적은 돈벌이입니다. 취미로 텃밭을 키우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그것들과는 목적이 다릅니다. 하지만 과정은 같은 것이지요. 식물을 키우거나 동물을 관리하거나 자식을 낳아 성인으로 올곧이 자라게 하는 일은 생명의 소중함에서 건강한 식자재, 나만의 안식대상이거나 또 다른 나의 이어짐이겠지만요.


올해는 딸기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어린 묘종을 심었던 시기에 병도 많이 하고 환경이 예년과 달라 영농에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과정이 어떠했듯 농부들도 어렵고 소비자들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비싸면 파는 사람들이 좋을 거 같지만 소비가 도리어 줄어듭니다. 선뜻 사먹기 어렵기 때문이죠. 싸다고 더 사먹는 것도 아닙니다. 딸기는 막 먹을 수 있는데요…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매해 매순간 다양한 변수들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뭐가 중요한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잘 선택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변수를 생각해보면 농사와 별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피곤하다고 건성이거나 피할 수만은 없는 것이라 믿습니다. 식물은 팔면 끝입니다. 말라 비틀어 지면 버립니다. 동물은 죽으면 끝입니다. 애석하기는 하지만 병들고 골치아프면 갖다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만들지 않거나 복잡한 관계를 피하게 되는 지도 모릅니다. 변수가 많고 피곤하다고 마냥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이 더 고민하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해결해나가야 하지만 같이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고 피하니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본질은 단순합니다. 변수가 많고 피곤할 뿐,


식물에 물을 주다 주다보면 단순한 본질을 깨닫고 그 단순함속에서 복잡한 관계와 변수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게 3년인데, 자식을 키우다 보니 매 순간이 피곤하고 막막하지만 행복도 거기에 있다고 웃는 날들이 생깁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생각해보니 가만히 누워 있었던 때였던거 같아요. 한 20년쯤 걸리는 거 같습니다. 빨라도…




설날 한바탕하고…물멕이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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