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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May 30. 2022

봄_3. 어학연수는 못해도...

육아휴직 세 번째 목표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들이 많구나.'

아들과 함께 어학연수를 겸한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육아휴직 세 번째 목표이자 하이라이트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해왔던 오래된 계획이다. 지인의 소개로 미국에 체류 중인 한국인들이 개설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2주 정도 들어가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들은 멕시코 휴양지 칸쿤으로 가족 여행을 가고, 6박 7일 동안 크루즈에 살면서 파티를 즐기고, 그랜드캐년과 옐로스톤으로 가는 방법을 공유했다. 많은 이들이 다녀왔고 많은 이들이 가려고 준비했다. 꿈에 나오는 얘기들이 그저 일상이었다.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이 많구나.' 부러웠고 궁금했다. 물론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주재원 같은 부류도 있겠지만, 2주간 글로 읽은 그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박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나왔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5개월 정도 머물면서 아들을 현지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생각했다. 맨 처음 생각한 방법은 '방문연구원(visitor)'이다. 내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방문연구원 비자를 받으면 아이는 현지 공립 초등학교의 무상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부모 중 1명이 대학(또는 연구소)에 방문연구원으로 입학하면 자녀들은 공립학교에 공짜로 다닐 수 있다. 기부금 명목으로 대학에 적지 않은 학비를 내고 한 달에 1~2회 출석하면 나머지는 자유 학습, 즉 아이를 돌보면서 여행해도 된다.


미국 방문연구원 비자는 J1이고 나머지 가족은 J2 비자를 받는다. 다른 비자보다 발급 방법과 절차가 간소해 굳이 유학원을 통하지 않고 발급받을 수 있다. 방문연구원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학교에 돈만 주면 1~2년 장기 체류할 수 있어 공무원과 일반 회사원, 기자, 정치인 등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관광비자로 미국과 캐나다에 3개월씩 번갈아 체류하며 어학원을 보내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많이 가는 어학연수인 셈이다. 나도 아이와 같이 어학원을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다. 별다른 출국 준비가 필요 없지만, 아이를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양육하려니 불안했다. 내년에 또래 친구들보다 진학이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됐다.


초중고등학교에서 개근상을 타야 했던 시대에 살았던 아빠로선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삶을 추구하고 변화와 혁신을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잠재의식에는 아직 보수적인 성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는 J1비자도, 어학원, 학비도 아니었다. 생활비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에 침실 1개와 화장실 1개가 딸린 아파트 월세가 250만 원이었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주거비가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월세를 낮게 잡아도 교육비와 식료품비, 교통비, 기타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고정 비용만 월 300만 원 이상 지출해야 한다. 해외 생활을 위해 모아놓은 돈은 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의 경험을 위해 월 300만 원을 쓴다? 아내는 인종차별도 우려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동양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가 처음 가보는 '서양'에서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커피숍에서 카페라테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수백만 원을 들여 가는데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불편하다면 굳이 이런 경험이 필요할까. 해외 체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계획한 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지루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다고? 난 아직도 이 역설에 좌절하는 '초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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