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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터프롬 Letter From Mar 01. 2023

의사가 되지 않은 의대생

약리학자, 홍기환 박사를 인터뷰하다

레터프롬 프로젝트 22번째 인터뷰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모든 순간이 이야기가 되는 곳, 레터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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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대 입학이 열풍이다. 비단 오늘날의 유행만은 아니다. 예전부터 의사는 돈과 명예를 모두 얻는 선망의 직업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된 지는 오래다. 그런데, 의대를 졸업하고도 의사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되지 않는 비인기 전공의 연구자가 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의학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뒷편에는 꾸준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각자의 분야를 성장시킨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꿈꾸는 ‘85세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누군가는 조용한 시골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할 테고, 누군가는 도시 야경을 배경 삼아 음주가무를 즐긴다. 또 누군가는 손주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는 모습을 꿈꿀지도 모른다. 여기, 공부와 사랑에 빠져 85세까지 약리학이라는 학문에 정진하는 홍기환 박사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 50년을 바쳐 ‘치매'를 연구했지만 아직도 2-30년 더 연구할 것이 남았다고 한다. 사그라들지 않는 그의 꿈을 향한 열정이 궁금해졌다.  


인터뷰 영상  85세까지 내가 하고 있는 일ㅣ약리학자 홍기환 박사 인터뷰



Part 1. 의대를 졸업하고 교수가 되기까지


Q1. 의대를 졸업하고 약리학 박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58학번으로 의대를 입학했어요. 원래는 법대를 준비했는데 재수를 하게 됐죠. 그 때 제가 시골에 살던 때여서 굉장히 가난했는데, ‘사라호’ 태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면서 사정이 더 어려워졌어요. 형편이 어렵다 보니 부모님께서 서울은 못 보내주셨지만, 부산대학교 진학은 안 말리셨어요. 그렇게 의대를 입학하게 됐어요. 입학하고서도 자취를 시작했는데 생활이 말이 아니었어요. 다행히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해결하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며 어렵게 어렵게 공부를 했어요.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치명적인 인명피해를 남긴 '사라호 태풍'


  그렇게 의사 면허 시험을 딱 치고 나오는데, 어느 교수님이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를 다방에 데리고 가시더니 ‘약리학을 하지 않을래?’ 라고 하시더라고요. 귀가 솔깃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를 좋아해주셨던 교수님은 내과 교수님이셨어요. 그래서 원래 내과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거든요. 이게 제 인생의 갈림길이었어요.

 

  저는 항상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뭔가를 연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약리학과 교수님이 약리학과 오면 교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신거죠. 그래서 나름대로 계산을 해봤더니, 내과는 교수님이 10명 정도 있는 반면 약리학과는 한 두 명밖에 안 계셨어요. 그래서 약리학과가 교수 되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갈팡질팡하던 중에 대학원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어요. 대학원 원서를 넣으러 가서 ‘약리학을 할까, 내과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 옆에 친구가 저를 탁! 치면서 ‘니는 약리학 해라!’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약리학을 선택하고, 교수가 되는 길로 접어들게 되었어요. 운명이 거기서 갈린 거죠.


Q2. 왜 항상 교수가 되고 싶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이 ‘새로운 무언가를 하나 찾아내고 싶다'였어요. 노벨상은 못 받더라도 연구에 대한 도전을 늘 하고 싶었어요. 여기에 맞는 직업이 교수였던 거죠. 의사가 될 생각은 거의 없었어요. 월급을 적게 받더라도 환자 보는 것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Q3. 박사님은 어떤 연구원이셨나요?


  저는 공부밖에 몰라요. 집착인 수준이죠. 하다가 안 될 때? 그런 건 없어요.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공부' 얘기를 하며 행복한 박사님


Q4. 연구원으로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1964년은 대한민국이 정말 가난할 때였어요. 그래서 학교에 ‘연구비’라는 게 별로 없었어요. 연구비를 따내는 것이 관건이었죠. 참 답답한 생활을 오래했어요. 제 아내가 고생이 많았죠.


Part 2. 나의 전문 분야, 약리학


Q5. 저희가 흔히 아는 학문은 약학이나 의학인데, 약리학은 무엇인가요?


  약을 사람한테 적용했을 때는 여러가지 반응들이 일어나요. 예를 들어, 감기약을 먹었을 때 감기가 낫는 메카니즘(Mechanism)이나 부작용 등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약리학은 이런 이론적인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약대에서는 약을 만든다면, 그 약을 인체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모든 작용들, Action(작용), Mechanism(원리), Side Effect(부작용) 등을 전부 공부하는 게 약리학이에요. 


박사님의 연구 논문

Q6. 분쉬의학상을 수상한 연구내용은 무엇인가요?

분쉬의학상 : 대한의학회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공동 제정한 상으로, 독일의학을 전파한 국내 최초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분쉬 박사의 이름을 땄다. 1990년 이후 20년 이상 국내 의학 발전에 획을 그은 저명한 수상자들을 배출하며 국내 최고 권위의 의학상으로 자리잡았다.


  제가 97년도에 분쉬의학상을 수상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제가 연구한 것들 중에 이 논문이 특별히 잘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이 논문을 포함하여 수없이 많은 연구들을 했거든요.

  

  뇌혈관에는 자율조절 기능이 (Auto Regulation Mechanism) 있어요. 예를 들어, 뇌혈관이 수축하면 혈관이 막혀서 혈액이 못 흘러들어가요. 뇌혈관은 당뇨병이나 여러가지 질병이 있을 때 수축하죠. 그래서 이 혈관을 열어줘야 해요. 그래야만 혈액이 심장에서 머리로 올라가 뇌에 분포될 수 있어요. 이것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메카니즘이 Auto Regulation이에요. 


  뇌혈관 안쪽에는 ‘내피세포’라는 것이 있어요. 이 내피세포에서 SERF (Serum-derived Extractor Relaxing Factor) 라는 물질이 나온다는 것을 제가 찾아낸 모양이에요. 


  사실 연구할 때는 그런 것도 몰랐어요. 연구하면서 ‘이것이 세계 최초다!' 이런 생각은 안 하거든요. 이게 세계적이다 뭐다 말하는 거는 학계에서 만든 말이지, 저는 그런 건 전혀 염두에 안 두고 연구를 했으니까요. 제가 또 성격이 두루뭉술해서 그렇게 거창한 건지 잘 모르기도 하고요.


'97년 분쉬의학상을 수상한 홍기환 박사


Q7. 수상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그냥 ‘주는가보다’ 생각했어요. 깜짝 놀랬다거나…그러진 않았고요. 저는 그런 걸 잘 몰라요. 

  (수상 시절 사진을 보며) 그 때 제가 웃기게 생기긴 했네요. (웃음)


Part 3. 80대까지 내가 살아온 방법 


Q8. 교수님에게 리더십이란?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어야 외롭지 않고 이웃이 있다’라는 뜻이에요. 논어에서 나오는 말이에요. 사실 ‘덕’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하도 어려운 말이라서 제가 메모해 놓았어요. “고마운 마음을 일으켜주는 사람”. 생각해보면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도록 행동하면 사람은 저절로 따라와요. 그래서 덕이 있어야 외롭지 않은 거죠. 


  저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보면 볼수록 뭔가 고마운 감정이 느껴지고, 만나면 좋은 말 해주고 싶고 이런 게 덕이라고 생각해요. ‘저 사람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저 사람 꼴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반대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 살아가는 데 꼴보기 싫은 사람 많죠. 


  제 성격이 유별나지 않고, 두루뭉술하고, 욕하지 않고, 솔직하고, 잘하는 것은 치켜 세워줘요. 교수들이나 제자들한테 얘기할 때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베베 꼬지 않고 심플하게 전달해요. 저를 만나면 뭔가 희망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 편이죠. 

  

  제가 학장을 두 번이나 했어요. 한 100명 정도 되는 교수들 사이에서 선거로 당선됐죠.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되기 힘든 걸 보면, 제가 '인덕이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인터뷰 하면서 고맙다는 생각 안 드셨어요? (웃음) 그렇게 살아오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집 안 방에 걸어놓고 항상 되뇌이는 '덕불고 필유린'


Q10.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저는 평생 ‘치매’를 연구했어요. 치매를 동반하는 질병이 알츠하이머인데, 알츠하이머가 시작되면 병리학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밟아서 결국은 뇌신경이 없어져요. 자식도 몰라보고 자기 집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치매가 오게 되는 거죠. 이러한 치매를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는지를 제가 연구했어요. 


  예방이라는 것은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요. 첫째, 운동. 걷기, 달리기 등 자꾸 움직일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해요. 둘째, 음식. 지중해식처럼 올리브유나 토마토 같이 건강한 음식을 즐겨먹으면 오래 살 수 있어요.

 

  제가 그 동안 연구한 약물로 치매 예방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그 내용으로 깊이 있게 책을 쓸 거예요. 앞으로 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치매 걸릴 확률이 좀 더 줄어들 거예요. 제 생각엔 책을 다 쓰려면 한 2-30년은 더 걸릴 것 같은데, 제가 2-30년을 어떻게 더 살 수 있는지가 문제죠. (웃음) 그래서 오래 살아야 해요. 그래야 해결돼요.


청년들에게 한마디


  낙관적으로 잘 될 것이라 희망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세요


  사람들은 긍정보다 부정이 더 많아요. 부정적인 생각부터 해놓고 긍정을 하려고 하죠. 그것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잘 될 것이라 낙관하세요. 희망을 잃지 말고 추진하세요. 대신 일을 하면 최선을 다하세요.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없어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단순하고, 될 수 있으면 겸손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할 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학장, 대학원장, 부총장 모두 경험했어요. 이 정도면 촌놈이 많이 한 거죠. (웃음)



다음 인터뷰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 인터뷰 풀영상은 '85세까지 내가 하고 있는 일ㅣ약리학자 홍기환 박사 인터뷰'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 letterfrom.offici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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