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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터프롬 Letter From May 29. 2023

발자국이 없는 길을 걷다

'아세티크' 김하림을 만나다

레터프롬 프로젝트 23번째 인터뷰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모든 순간이 이야기가 되는 곳, 레터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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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삶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하고, 청년이 되어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각 시기마다 기다리고 있는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그러나 가끔 남들이 만들어 놓은 둘레길을 걷기보다, 울창한 숲 속에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 혹은 특이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은 쌓이고 쌓여 나이가 들수록 그 무게는 무거워진다. 그런데, 온통 불안한 선택을 했지만 후회는 되지 않는다는 사람을 만났다.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세계 여행을 떠났다. 여행 자금은 공장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마련했다. 회사원이 되기보다는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를 선택했다. 고향이 아닌 머나먼 타지, 멕시코 와하카에서 게스트하우스와 비바투어의 사장님이 되었다. 멕시코, 아프리카, 미국 등지의 작품들을 발굴해 ‘아세티크’에서 공간 브랜딩을 하기까지, 삶의 모든 순간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인생은 어떻게 빛나고 있을까?


인터뷰 영상 >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으로부터 | 김하림 인터뷰



Part 1. 가방 대신 배낭을 메다


Q1.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세계여행을 선택했어요. 그 당시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었나요?


  여행을 가고 싶어서 대학을 포기한 게 아니에요. 대학을 가지 말아야겠다는 확신이 더 컸어요. 아시다시피 등록금이 좀 비싸잖아요.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제가 투자해야 하는 돈과 시간의 기회비용이 정말 크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관광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중학생 때 여행과 관련된 책을 우연히 읽게 됐는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어느 정도였냐면, 동네 도서관에 있는 여행 관련 책은 싹 다 읽었어요. 그러면서 ‘여행’을 깊이 파고들고 싶고 이걸로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관광학이 있었던 고등학교를 진학했고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가보니 관광 일을 하려면 필드(field), 즉 여행 경험을 많이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학에 대한 불신과, 여행을 하겠다는 확신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Q2.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불안함도 많았을 텐데,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난 건 아닌 것 같아요. 세계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어땠나요?


  단순히 즐기는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어요. 남들은 대학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을 시간이잖아요. 저도 여행을 다니면서 뭐라도 얻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일을 많이 하면서 머무는 여행을 했던 것 같아요.


  과테말라에 갔을 때는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웠고, 아르헨티나에 살 때는 호스텔 알바를 했죠. 나름대로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계속 찾아다녔는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이런 경험들이 실질적으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전부 자기 만족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 여행을 떠났다


Part 2. 멕시코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Q3. 그래서 마지막에 정착한 나라가 멕시코였나봐요. 멕시코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는데, 사실 타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게 굉장히 힘든 일이잖아요. 어떤 계기로 게스트하우스 호스트가 되었나요?


  세계여행 중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갔던 나라가 멕시코였어요. 제가 운영했던 그 호스텔도 여행 다닐 때 실제로 묵었던 호스텔이었고요. 둘 다 정말 좋은 기억이었어요.


  호스텔을 인수하게 될 당시 원래는 호주에서 워홀을 하던 중이었어요. 그 시기가 마침 제가 여행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 의미없이 돈만 벌던 중이었는데, 멕시코 호스텔에서 인수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제게까지 닿은 거죠. 저한테는 그 소식이 마치 탈출구이자 빛처럼 느껴졌어요.


  사실 저는 호스트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할 게 없어서 한 거예요.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는 수많은 기회의 버스들이 지나가요. 가끔은 그게 버스인지 모를 때도 많고요. 버스가 왔는데 타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 저는 딱히 할 일도 없고 돈은 조금 모아둔 상황, 그래서 운 좋게 그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거죠.


  이게 제가 24살 때의 일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24살이 멕시코에서 혼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는 건 미친 짓이에요.


멕시코 와하까의 게스트하우스


Q4. 전직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으로서 호스텔 운영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시설, 가격, 서비스, 위치 같은 것들은 객관적으로 당연히 중요한 것들이에요. 그런데 제가 깨달은 건 호스텔의 컨셉, 분위기,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24살이 운영하는 호스텔은 24살스러울 수 밖에 없어요. 굉장히 자유롭고 친구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죠. 호스트와 게스트의 경계가 없고, 친해지면 같이 카페도 가고 술도 마시고 클럽도 가요. 이렇게 하루이틀이 쌓이니까 호스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하림이네 게스트하우스는 친구 같은 분위기래!’


  약간의 브랜딩도 했는데, 호스텔 마스코트가 들어간 티셔츠와 스티커를 만들어서 투숙객들에게만 제공했어요. Annual party도 매년 개최해서 투숙객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죠. 이런 사소한 것들이 베네핏이 되어 고객을 자연스럽게 끌어올 수 있었어요.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하는 게 필수조건이라면, ‘나만이 가져갈 수 있는 이미지’로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친구같은 하림이네 게스트하우스


Part 3. 나의 현재와 미래


Q5. 멕시코 호스텔에서 연이 닿아 지금은 한국의 ‘아세티크’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아세티크’는 쉽게 말하면 공간 브랜딩과 컨설팅을 하는 회사예요. 예를 들어 카페를 차리고 싶잖아요? 그러면 인테리어 회사를 찾아갈 거예요. 사업은 그 때부터 시작이에요. 저희는 여기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동선이 나오는지, 공간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는 무엇이고, 날씨에 따라 플레이리스트가 달라질 수 있고, 그 음악이 어떤 장비를 만나면 가장 좋은 음향이 날지, 또, 어떤 가구를 들여야 할지, 시각적인 요소들은 어떤 것들이 첨가되면 좋을지, 어떤 오브제를 어디에 놓을지 등등. 한 공간의 A부터 Z까지 담당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세티크의 작품들

  현재 아세티크에 있는 작품들을 해외에서 발굴하고 한국으로 들여오는 일도 제가 맡고 있어요. 우선 셀러에게 연락을 하죠. 저희 회사를 소개하고, 가격을 협상하고, 유통 방식부터 품질관리, 대금 지불까지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요.


  예를 들면, 멕시코 박물관에 굉장히 유명한 오브제가 있어요. 그런데 이 오브제는 할리스코 주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산품 같은 거예요. 우선 구글부터 페이스북까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검색이란 검색은 다 이용해요. 이런 리서치를 통해 셀러를 찾고 도매상에 연락하고 제작 의뢰를 맡겨요. 한국에 있기 때문에 원초적인 방법으로 연락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있죠.


Q6. 앞으로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제가 코로나 때문에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케이스인데요, 사실 이미 코로나 이전에 호스텔은 다른 사람에게 넘긴 상태였어요. 멕시코에 ‘메스칼(mezcal)’이라는 정말 맛있는 술이 있는데 한국에는 아직 없어요. 그래서 메스칼을 브랜딩해서 한국으로 들여오고 싶어서 메스칼 공부를 하면서 사업을 준비 중이었죠.


  그러던 중에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코로나 덕분에 한국에 강제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 게 참 다행이에요. 그래서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웃음) 저는 코로나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코로나가 없었다면 제 성격상 사업을 시도했을 게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주류 사업이라는 게 자본의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마 실패했을 확률이 커요. 무작정 행동하는 저를 코로나가 말린 셈이죠.


  아직도 메스칼 사업의 꿈은 가지고 있어요. 아세티크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제 꿈이랑 연관돼 있어요. 멕시코와 끊임없이 컨텍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아세티크는 대표님들이 모여서 만든 여러 사업들 중 하나인데, 제가 F&B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면 어떨까 꿈을 꿔요. 실제로 대표님들도 메스칼 사업 언제 시작할 거냐고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웃음)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 '메스칼'


Part 4. 내 삶의 방식


Q7. 하림님의 인생을 들어보면 평범한 길을 걸어오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나요?


  감히 추천드리진 못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과정 속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그런 방식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꽤 괜찮다’는 말은 할 수 있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잖아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따라올 수 밖에 없어요. 그 정도가 얕고 깊냐의 차이지 후회가 없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온전히 제가 한 선택과 결정에는 그 후회가 덜 했어요. 탓할 게 저 밖에 없거든요.


  사람들끼리 얘기하다 보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들이 나오잖아요. 저는 항상 돈을 줘도 절대 안 간다고 해요. 그만큼 그 어느 순간에 대한 후회도 없고, 돌아간다면 그 때만큼 최선을 다해 살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한 선택이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부모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는 없는 거죠. 후회에 점철되지 않는 삶이라는 점에서 '꽤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대학을 가지 않기로 선택한 그 당시만 해도 대학을 안 간다는 건, 20대 시작부터 이방인, 루저 취급을 받는 거였어요. 제가 아무리 확신이 있었다 해도, 울창한 숲을 걷는데 발자국이 어디에도 없으면 열심히 걸어도 불안하고 외롭거든요. 더 잔인했던 건 이런 감정을 나눌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는 거예요. 부모님께 이야기하면 ‘그러게 대학을 가지 그랬니’라고 생각하실 테고,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저는 해외에서 마냥 여행다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작은 성취를 계속 하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오늘 같은 인터뷰도,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아 그래도 내가 괜찮게 살았나보다, 틀리진 않았나보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렇게 불안감이 해소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청년이 청년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가 항상 가지고 있는 마음과 자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예요. 물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도 되게 중요하고 필요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러한 생각과 고민이 행동과 맞물려야 비로소 그 가치가 발현된다고 생각해요.


  너무 오래 고민하기보다는 가끔은 ‘그냥’ 행동하는 것이,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 마인드였기 때문에 세계 여행도 다니고, 멕시코에서 살면서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제가 행동하지 않았다면, 게스트하우스도, 비바투어도, ‘아세티크’에서 일할 기회도 없었을 거예요. 청사진을 다 그려놓고 한 번에 이루려고 하기보다,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잃을 게 없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멕시코에서의 Auual Party




인터뷰 풀영상은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으로부터 | 김하림 인터뷰'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letterfrom.offici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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