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Nov 18. 2022

과잉이 기준이 되는 시대

캐나다구스는 언제 입어야 하나

캐나다에는 유명한 의류 브랜드가 하나 있다. 캐나다구스. 남극와 북극에서 연구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이 입는 방한복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유명세 탓인지 아니면 방한 효과 탓인지, 그도 아니면 정말 재료가 비싸서 그런지, 무상 교환 정책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비싼 옷이다.  


캐나다는 한국보다 기온은 더 낮고, 눈도 더 많이 온다. 그나마 남쪽인 토론토가 이럴진대, 북쪽은 더 심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캐나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에는 한 겨울에도 캐나다구스를 입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캐나다구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아니, 토론토에서 웬 캐나다구스야... 라거나, 더운 나라에서 왔나... 이런 반응들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겨울이 되면, 이제 토론토는 캐나다구스 천지다. 올해 처음으로 영하 1도로 기온이 내려간 날, 가장 젊은 직원이 캐나다 구스를 입고 왔다.  


어, 벌써 캐나다 구스예요? 예, 추워서요.  


이 정도 추위면 캐나다구스가 아니더라도 막아줄 옷이 널렸지만, 가진 중에 제일 쎈 놈으로 골라입고 온 것이다. 벌써 캐나다구스를 입었으니, 이제 개나리와 철쭉이 필 때까지 달리 그를 만족시킬 옷은 없다. 겨우 내 캐나다구스만 입어야 한다.  


어떻게 캐나다구스가 토론토의 겨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토론토에 돈이 좀 있는 중국과 중동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캐나다구스를 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되어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캐나다에 온 후 캐나다 기온이 더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지방에서 입는 것으로 치부되던 캐나다구스가 이젠 겨울 옷의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드물던 캐나다구스 매장은 이제 줄 서서 대기해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다.  


추위를 막는다는 면에서만 보면 분명한 과잉이다. 그런데 한 번 ‘과잉’이 표준이 되고 나면, ‘적당함’과 '충분함'은 자리를 틀 곳이 없어진다. 적당함 뿐이 아니라,  ‘유용함’, ‘독특함’ 같은 가치도 설 자리가 없다. 명품 혹은 고가품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과잉은 이유를 묻지 않고 가치를 따지지 않고 자신들이 기준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과잉이 기준이라니 – 그래도 나도 기준은 맞추고 싶지 않은가. 영하 1도는 아니더라도 영하 10도에는 핑계삼아 입을 캐나다구스가 있으면 좋겠고, 모임에 들고나갈 명품 가방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나. 그게 기준이라고 하니 말이다.  


과잉을 부추기는 세대에 편승해서 승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분명한 건 나는, 그리고 대다수는, ‘과잉’이 요구하는 ‘기준’을 맞출 수 없을 것이라는 거다. 그러니, 모든 것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늘 ‘결핍’인 것 처럼, 결핍의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할 거라는 거다. 패자의 삶이다.


과잉을 이기는 길은 과잉을 거부하는 것 밖에 없다. 과잉은 내가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비로소 힘을 갖는다. 거부하는 자에게, 거부하는 사회에 과잉은 힘이 없다. 


그런데, 가능할까. 토론토에서 캐나다구스를 입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는 그 날이 다시 올까.

매거진의 이전글 속도와 감각에 스러지는 나의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