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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 중년심리 May 08. 2024

평생을 따라다니는 잔인한 기억 트라우마, 왕따, 군대

트라우마는 무의식 속에 숨어서 나를 괴롭힌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악몽같은 군대에 재입대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군대에서 구타당하던 끔찍한 기억이 악몽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한밤중에 땀을 흘리며 깨어난다. 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오지만, 공포와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군대를 제대한지 30년 이상이 지났지만,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구타당했던 잔인한 장면 속으로 나는 다시 돌아간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군대에 재입대한다는 악몽을 꾸다가 깨어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 친구들도 그런 악몽의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해서 함께 웃었던 기억도 있다.


자기 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는 상대와 협상할 때 아주 지친다. 계속 똑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오랫동안 회의가 진행되어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기 주장만 관철시키려고 회의 끝에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답답하다. 그럴 때 나는 참고 참다가 갑자기 폭발한다. 참고 견뎌야 내가 그 회의에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데, 내가 폭발해서 화를 내면 오히려 그 판 자체가 깨지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에 내가 당했던 굴욕감, 공포, 고통, 열등감 등의 트라우마가 내 무의식 속에 숨어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면 트라우마가 다시 의식 속으로 떠올라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트라우마는 무의식 속에 숨어있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겪은 심각한 스트레스, 충격, 또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고있다가, 나중에 특정한 자극이나 상황에서 다시 떠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감정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트라우마가 무의식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플래시백" 또는 "감정 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플래시백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당시의 기억, 감정, 혹은 신체적 반응을 생생하게 다시 체험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감정 폭발은 트라우마 경험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거나, 충분히 처리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


  나는 유년 시절에 몸이 많이 약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체육 시간에는 대부분 교실에서 혼자 남아있었다. 유년 시절에는 몸이 약한 아이들을 튼튼한 아이들이 왕따 시키는 경향이 있다. 나도 왕따 당한 기억이 있다. 40년 이상이 흘렀지만 그때 왕따 당했던 상황과 장면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특히 과거 군대에서는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구타가 횡행했다. 어두운 창고에 집합해서 선임병들의 구타를 대기하던 공포와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40년 전 군대로 돌아가, 어둡고 컴컴한 창고에 겁에 질려 서있는 것 같다.


승진에 누락할 때도 나 자신이 비참해 보였다. 나는 비교적 직장 생활 초반부에는 승진이 빨랐지만 직장 말년에 승진이 계속 누락했다. 후배들이 먼저 나보다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비참함, 그리고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직장을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했지만, 가족을 위해 굴욕감을 참고 견뎠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머릿속으로는 정리가 되고 합리화되었다. 

'내가 몸이 약해서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내가 제일 잘난 존재였어.'

 '과거 군대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나는 잘 참으며 탈영하지 않고 잘 견뎠잖아.'

 '직장에서 승진에는 누락했지만 그래도 주말에 인문학 공부를 해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직장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인생에서 성공하면 되잖아.'


머릿속으로는 다 정리가 되었지만 마음속의 트라우마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트라우마는 무의식 속에 깊이 숨어 들어가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때마다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여 비참하게 만든다.

 

그러면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무의식 속에서 끄집어내서 치유할 것인가?

내가 감당할만한 수준까지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트라우마를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내가 다시 비참해지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트라우마를 다시 꺼내면, 그 상처를 다시 느끼는 듯한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지만,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어야 한다.


퀘이커 퀘스천이라는 교회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처음 만나는 모임에서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이 있다. 내 인생의 따뜻했던 시기, 추웠던 시기를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인생의 추웠던 시기를 처음 얘기할 때는 눈물이 쏟아지고 말문이 막혀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음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첫 번 보다 어렵진 않았다. 두세 번 반복하면서 점차 점차 내 마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를 치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트라우마는 나에게 공포, 굴욕, 비참한 기억이다. 그 상처가 어떻게 쉽게 치유될 수 있겠는가? 


트라우마로부터 빠져나오려면 폭발적인 경험이 일반적인 경험처럼 낮추어져야 한다. 이것은, 트라우마로 인한 강렬한 감정적 반응이 점차 일상적인 수준으로 낮아지는 과정을 말한다. 


과거의 상처는 아직도 나에게 공포와 굴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감정의 격렬함이 점차 잦아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심리상담사와 대화를 나누거나, 예술 활동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며, 조금씩 치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길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위로가 된다. 가족, 친구, 커뮤니티 그룹 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 지지를 받는 것은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은 길고 험할 수 있지만, 고통을 함께 나누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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