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이 입금되고,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구직이었다. 그 길다면 긴 지옥같은 기간동안 여러 회사들의 면접을 보았다. 가장 유력했던 회사 3개를 꼽자면, 같은 계통의 글로벌 유명회사, 성장을 준비하던 IT 신생 스타트업, 안정적인 산업군의 외국계 회사가 있었다. 세군데 모두 매력적이었으나, 전에도 말했듯 서로의 니즈가 일치하지 않아 계약까지 이루어지진 않았다.
회사 한 곳을 면접 볼 때에도 산업군에 대한 공부, 이력서 수정, 나의 직무 및 퍼포먼스 정리, 몇 차례의 면접, 면접 후 연봉 협상 등, 길고 힘든 절차들을 무조건 거쳐야 한다. 해고 관련 일을 해결하면서 함께 이직 준비를 했기에 몇 배로 진이 빠지고 힘들었다. 면접이 잡히면, 해고 관련 일에 집중하던 나 자신을 밝고 자신감있는 사람으로 다시 세팅하여 면접을 봤기에 더욱 그랬다.
아직 회사는 못 정했지만, 몇 달정도 월급 수준의 보상금이 생활을 가능케 해준게 고마웠다. 아니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다음주면 아이를 만나는 날이었다. 이 3주의 지옥같은 시간을 겪던 나를 보던 만삭의 와이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내는 힘든 내색 한번 없이 나를 지지해주고 기다려주었다. 참 강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출산예정일이 1주 정도 남아, 와이프도 몸이 더욱 무거워져 힘들어 보였다. 와이프가 할 수 있는만큼 동네를 산책하고 들어오는게 하루의 일과였다.
"우리 튼튼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코는 나 닮고 눈은 여보 닮았으면 좋겠다."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
등등 아이에 대한 얘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쳤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보상금 덕에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와이프와,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와 종일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구직기간이 길어지면 산부인과, 산후 조리원에서도 함께 지내며 와이프와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1주가 지나고 출산일이 되었다. 출산 전날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지를 들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와이프와 함께 산모 대기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분은 와이프를 병실침대에 눕히고는 출산과정에 대해 설명해주고는, 출산할 때 맞아야하는 몇가지를 링거를 통해 맞았다.
와이프는 작년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한 달간 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 다음 한 달은 요양병원에서 지내야했을 정도로 큰 수술이었다. 수술 후 앞으로 아이를 가지긴 힘들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딩크족으로 살자고 계획을 짰었다. 그 후 몇 주 지나지 않아, 튼튼이가 우리를 찾아와주었다. 예상하지 못한 임신이었기에 임신사실을 안 당일, 와이프와 나는 기쁜 마음을 느낄새도 없이 얼떨떨한 표정과 마음으로 그 날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얼떨떨한 기간도 잠시, 임신 몇 주가 지나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튼튼이가 보내오는 심장소리를 들었을 땐 가슴이 벅차고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 밀려왔다.
"쿵쾅 쿵쾅 쿵쾅."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우리에게 잘크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듯, 1센치도 되지않는 튼튼이의 심장소리는 빠르고 우렁찼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튼튼이를 마주하는 날이었다. 우연의 일치로 와이프 생일과 같은 날에 튼튼이가 나오게되어, 더욱 튼튼이가 축복처럼 느껴졌다. 산모 대기실에 간호사 분이 들어오셔서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시곤, 와이프를 분만실로 옮기기위해 침대를 함께 끌고 나갔다. 와이프와 짦은 인사를 하고,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제왕절개로 분만시간은 약 30분으로 잡혀있었고, 그 시간이 한 달처럼 느껴졌다. 보호자 대기실에 홀로 남겨진 나는, 아이의 출산에 내가 할 수 있는건 기도밖에 없다는게 실감났다. 몸도 안좋은 와이프가 튼튼이를 만나기 위해 홀로 힘을 내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이는 어땠으면 좋겠다 같은 얘길 서로 자주 하긴했지만, 막상 출산시간이 되자 와이프와 아이가 건강하기만 바라게 되었다.
"와이프도 건강하게, 튼튼이도 건강하게 출산이 끝나게 해주세요."
무교인 내가 아는 신들 모두에게 돌아가며 간절히 기도를 했다. 약 30분이 지나고, 문밖에서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분이 울고있는 아기를 들고 들어왔다. 튼튼이였다.
출산 직후의 갓난 아기를 직접 보는건 처음이라 얼떨떨한 상황 속에서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 청력 등 여러 감각이 정상임을 간호사가 확인해주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나서, 탯줄을 기념으로 자르라며 간호사자가 내게 가위를 건넸다.
"싹둑."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튼튼이의 상태를 체크하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 느껴졌다.
'우리 아이다.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책임감과 함께 처음 느껴보는 부모됨의 행복감이 온몸에 퍼졌다.
"튼튼아, 아빠야. 좀 있다 봐!"
튼튼이와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아이는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흥분상태를 가라 앉히고 와이프를 맞을 준비를 하러 산모실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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