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는 정리를 해야 될 때
내 나이 서른아홉.
인간관계 정리를 했다.
19살에야 그저 20살이 된다는 기쁨밖에 없었고
29살에는 30이 되면 청춘이 끝난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했었지만
30대는 그나마 아직 젊다는 위안감에 살아왔다.
하지만 30 중반이 되고 어느새 39살이 되자 덜컥 겁이 났다.
30대야 20대와의 접점이 있었지만
40대는 50대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면서
40이 되면 정말 그나마 젊은 시절 끝나고 이제 누가 봐도
아저씨가 되는구나 하고.
인생의 반이
탄생과 가까웠던 삶이었다면
이제는 죽음과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었다고
온갖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유독 추웠던 39살이었던 해의 12월 겨울
나는 그렇게 겨우내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의 인간관계는 대단히 좁다.
자업자득이겠지.
주변 지인들을 둘러보니 학창 시절 친구라고는 대학교 시절 겨우 한두 명
나머지는 모두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또 사회동호인 지인 몇 명
외로울 때 사람이 찾는 건 또 다른 사람이다.
날이 춥고, 비가 오고 괜스레 저녁이 되면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해진다.
메신저의 친구 목록을 쭉 봤다.
10여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 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리스트에 있었다.
평소와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39살의 외로움은 여느 외로움과 달랐다.
더 이상 두고 볼 수없다. 이것은 정리를 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과연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정말 믿고 의지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왜 정작 내가 필요할 때,
또는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들과 더 자주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도 투자라고 하면
나도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더욱 투자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불현듯 내 주변에 인물들을 한번 분류를 해보았다.
1. 남들이 모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2. 자기 자신을 많이 드러낼 수는 없지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3. 겉으로는 친하지만 속으로는 별로 안 친한 사람
4. 겉으로도 속으로도 별로 안 친한 사람
단순하게 정리하면
1. 절친
2. 친구
3. 회사 친구
4. 친구 아님
그래서 고민 끝에 정리를 시작하였다.
우선 대화가 전혀 없던 사람은 삭제
대화는 있었으나 근 1~2년간 대화가 없던 사람은 삭제
절친과 친구들만 즐겨찾기를 해두고
나머지 정리된 사람들은 회사 지인들로 남겨두어야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 시간은 금이다.
시간을 소중히 쓰자.
소중한 시간인 만큼 소중한 사람에게.
다시 못 올 시간인 만큼 후회 없을 일에 쓰자고 그렇게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새해가 되자마자 일출을 보면서
결단을 못 내려 마지못해 끌어오던 일이나
의미 없이 유지해오던 인연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물론 나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다.
더욱이 인간관계는 대단히 어렵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 나이 40에 들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다.
내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
소중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든 일이든
우리가 투자할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 사람을 만나면서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과감히 손절하자.
이 생각을 조금이라도 빨리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러한 결단은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서른아홉에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외로움은 수많은 사람 속에 혼자라고 생각할 때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한결 가벼워진 친구 목록을 보니 이제는 그다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전에는 이 많은 사람 중에 내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주변에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들 내가 필요할 때 함께 해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친구가 많고 항상 밝은 사람도
파티가 끝나면 외로울 때가 있을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
매일 밤 파티를 여는 게 아닌 이상
나는 그저 묵묵히 막걸리나 한잔 따라줄 친구 하나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