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비례하다.
인간의 밑바닥.
나는 나 자신의 밑바닥을 알고 있는가.
또는 다른 누군가의 밑바닥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이면이 있다.
그리고 그 이면 중에서도 특히 밑바닥이라고 함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일종의 인간의 어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어두운 면을 깊이깊이 숨기고
평상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평범하게 행동을 하다가,
때로는 어떤 감정이 폭발하여 자신의 어두운 면을 표출하고는 한다.
그제야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이 저런 면이 있구나 라고 알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는 이러한 면면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상대의 좋은 면을 계기로 인간관계가 시작이 되고
사귀다 보면 상대의 다른 면도 발견하게 되고
때로는 상대의 어두운 면까지 알게 된다.
그렇게 상대의 밑바닥까지 근접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상대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밑바닥을 보거나,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인간의 밑바닥의 노출도는
친밀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가까운 사이일수록 밑바닥이 노출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이는 베스트 프렌드나, 오랜 연인, 가족들이 주로 해당되는데
왜냐하면 나의 이면을 알고도 이해해주거나
또는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밑바닥은 한번 보여준 상대에게는
더 쉽게 노출되고, 더 심화되는 경향도 있다.
나의 밑바닥을 알기에 오히려 그런 상대에게는
이면 노출의 고삐를 스스로 느슨하게 쥐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게 되고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다.
너무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가 때로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처를 주고
알면 알수록 상대를 함부로 대하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친밀도가 상승하는 것과 이면을 드러내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은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많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이 좋든 싫든 어느 정도(100%는 절대 아니다)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바로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실 나라는 인간이 타인에게 보여주는 면면은 매우 복잡한 결과물이지만
이 글에서는 단순하게 가식(=이성)과 이면(=본성)*으로 나눠서 수치로 표현해보면.
*하지만 이면만을 꼭 그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설명하기 위해서 단순하게 나눴을 뿐이다. 그리고 이성을 가식이라고 표현한 것 또한 좀 더 양극화시켜서 표현하고 싶어서이지 반드시 그러한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평상시의 나는 가식이 90% 이면이 10%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사람에 따라서 친밀도에 따라서 가식이 50% 이면이 50%로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이면이다.
이면의 모습은 친밀도로 비칠 수 있으면서도, 그 정도가 과하면 때로는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면이란 밑바닥으로 갈수록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고민했다.
왜 친하게 될수록, 허물이 없어질수록 상대에 대한 실수가 잦아지는가.
결과적으로 친해지고 가까이 갈수록 나중에 멀어지게 되는 친구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그 원인은 바로 나였다.
그들은 나의 이면을, 나라는 인간의 밑바닥을 더 이상 못 견딘 것이리라.
나이를 먹고 여러 인간관계를 거치고
나의 밑바닥을 알게 되면서
항상 깨닫게 되는 인간관계의 진리는 하나이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소중하게..
정말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실천하고픈 인간관계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절대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