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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조언은 공격처럼, 칭찬은 보상처럼

기분에 맞는 관계만 남긴 사람

by 정민

왜 그는,

가벼운 칭찬 한마디에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었을까.


그 한마디가,

오래 굶은 사람에게 빵 한 조각처럼

너무 쉽게, 너무 깊이 스며들었다.


장면은 늘 비슷했다.

기분을 바꾸는 건 말의 온도보다,

말 뒤에 곧바로 솟구치는 반응이었다.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숨부터 가팔라졌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말을 건네면

그는 침묵하거나, 의심하거나, 화를 냈다.


처음엔 단순한 방어처럼 보였지만,

곧 대부분의 관계에서 같은 반응이 반복됐다.


그는 대화를 이어가는 기준을

‘말의 진심’보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에 두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마치 다른 온도의 방에 홀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감정이 오가는 자리는

그에게 대개 불편한 공간이었다.


그는 숨을 고르지 않았다.

대신, 숨부터 죽였다.




한 형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동네 사람이었다.


연애 전부터

그는 그 사람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그 형 이상하지 않아?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야?“


그 형을 두고 주변에선 여러 말이 오갔다.


심지어 그의 부모님과 친구들도

"그 사람은 좀 멀리하는 게 낫다"고 했다.


몇 번이고 물었지만, 끝내 끊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깊게 들어갔다.


어느 날,

그 형이 새롭게 시작한 일이 사실인지 궁금했던 그는

다른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그 장소까지 가서 두 눈으로 확인했다.


결국,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었다.


하지만 그는

그 형과 술을 마시고 올 때면

변명처럼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 형은 나랑 결이 비슷하고,

날 그대로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야.”


술잔이 부딪히면,

앞선 말은 금세 사라졌다.


사라진 건 말뿐 아니라,

그가 스스로에게 세운 경계였다.


그는 다시 그 형을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이라 말했다.


그의 반응은 상황보다

찰나의 감정에 더 흔들렸다.


자기 기분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말은

밀어내고,

자신을 떠받쳐주는 존재는

곧바로 끌어안았다.


그는 기분에 반응할 뿐,

감정을 조율하지 않았다.


그의 직장 상급자가 복도에서 스치듯 말한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 한마디에,

그는 곧바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진짜 기분 좋더라.

나 괜찮은 사람이래.“


나는 말했다.

"좋았겠다.

그래도 너무 마음을 쉽게 열지 마.

너는 늘 마음을 금방 주잖아.“


그 후 그 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조금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맞받았다.

"대체 네가 뭘 아는데!“


그 순간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그때부터

그는 한동안 나와 그 이야기를 피했다.


몇 달 뒤,

술자리에서 불확실한 소문을 들은 그는

"네 말이 맞더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웃음 속 공기는 이미 식어 있었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만 유난히 또렷했다.

그 순간, 웃음의 온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또 다른 날, 동네 형들과의 술자리였다.

한 형이 헤어지기 전, 장난스럽게

"나 사실 게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이 아니라 장난처럼 들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숨이 잦아들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첫마디부터 날이 서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해? 그게 장난이야?“


그는 한 시간 넘게, 그 말이 왜 자신을

무시한 것처럼 느껴졌는지 토로했다.


그리고 결국,

그 장면을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웃음 속에서도, 그의 눈은 칼끝만 좇았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만나면

대화의 결이 바뀌었다.


장난이나 조언,

애정 섞인 농담도 마찬가지였다.


그 감정은

말 대신 취한 목소리로, 새벽 전화로,

짜증 섞인 침묵으로 흘러나왔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과 형들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리를 두었다.


관계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다.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만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렇지 않으면

방어가 먼저 앞섰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상황은 늘 같았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서,

다른 얼굴만 갈아 끼웠다.


심지어

본인이 먼저 물어놓고도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몇 번이고 되묻거나

왜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따졌다.


그는 감정 그 자체보다,

감정이 만드는 ‘불편한 기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지는 말을 마주하면

그것을 불쾌로 바꾸었고,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호의로 반응했다.


그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인물을 자신의 기분에 맞게 해석했고,

불편해지면 거리를 두었고,

칭찬 앞에서는 마음의 문이 쉽게 열렸다.


그건 단지 회피형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감정을 다루지 못한 채,

그 감정에 휩쓸려가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흐트러지면 대화도, 관계도 함께 무너졌다.


기분이 좋으면 가까워졌고,

불편하면 의심하거나 거리를 뒀다.


그의 반응은 날씨 고르기와 닮아 있었다.

햇볕만 골라 나가고,

구름이 끼면 집 안으로 숨어버렸다.




결국 그는 ‘자기 감정에 맞는 관계’만 남겼다.


그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서만

마음껏 웃고, 떠들고, 이해받고 싶어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늘 말했다.


"쟤는 나랑 성격 똑같아.“


하지만 그것은 실제의 닮음이라기보다,

그렇게 믿는 편이 마음이 편해지는 선택에 가까웠다.


그 동일시는 오래가지 않았다.


기대만큼 반응이 없으면 실망했고,

곧 거리를 뒀다.


나는 애인의 자리에서

어긋나면 밀어내고

불편 앞에서는 멈추는 그의 습관을 보았다.


그가 반복해서 동일시했던 사람들은

결국,

그가 감정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꼈던 관계들이었다.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 거리.


그는 말했다.

"그 형들이 나를 더 잘 알아.“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진짜 이해란,

감정이 불편해도

끝까지 곁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 관계는 종종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지만,

끝내 꺼뜨리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는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 곁을 오래 지켜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것은 애정보다 인내를 더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는 불편함 앞에서 회피를 택했고,

감정을 마주하는 대신 거리를 안전지대처럼 여겼다.


다가가기보다

스스로 문을 잠갔다.


결국, 그 가까움을 지켜내지 못했다.


마음을 지키는 법보다

마음을 감추는 법이 그에겐 익숙했다.


남은 건 변하지 않은 그의 방식,

그리고 무너진 우리였다.


잔향처럼, 그날의 공기만이 남았다.

그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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