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나를 붙잡았다
연애가 끝나기 전, 부모님은 이렇게 말했다.
“남의 집 귀한 아들, 곱게 잘 제자리로 돌려놔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마치 이 사랑이 오래가지 못할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다.
사랑은 끝났지만,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나를 발견했다.
그의 곁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나의 얼굴, 감정, 무너진 방식마저도
모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조각이 되었다.
나는 그 실패를 통해 알았다.
관계의 언어가 어긋날 때,
그 끝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발견의 시작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그 고독의 끝에서
끝내 닿지 못한 마음들 위에 서서
내 삶을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흩어진 조각 위에 다시 서서
나를 말하기 시작한다.
모든 끝에는 울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의 울음은 이별이었고
나의 눈물은 회복의 시작이었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었다.
수년을 함께했지만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엔 울지 않으려 했다.
끝까지 말을 붙들고 싶었다.
눈물이 터지면
아무 말도 못한 채
이별이 감정으로만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담하려 애썼다.
그러나 끝내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내 울음은 애절함이 아니라,
관계가 끝났음을 실감하게 하는 눈물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손끝은 파르르 떨렸고
숨은 흐트러졌다.
방 안에는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울음과 울음 사이,
말이 끊긴 틈마다 공기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흐느낌보다 침묵이 더 크게 울렸다.
그 울음은 사랑의 고백이 아닌
담지 못한 감정의 폭발이었다.
우리는 같은 방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의 눈물은 사랑이 아니었다.
내 위로가 마지막 남은 사랑이었다.
사랑을 끝까지 붙든 쪽은 울던 그가 아니라,
그를 다독이던 나였다.
그가 건넨 말들은 낯설지 않았다.
“아프지 마. 병원 꼭 가.
너는 뭐든 잘 해낼 거야.”
듣기에 따뜻했지만,
며칠 전 내가 먼저 보냈던 문장들이
되돌아온 것뿐이었다.
그 안에는 함께 하겠다는 다짐도
책임을 나누겠다는 약속도 없었다.
그 다정함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덜 미안하게 만들려는 말들이었다.
그날 나는 묘한 모순과 마주했다.
그는 울었지만,
끝까지 버틴 건 나였다.
나는 울면서도
그의 울음을 받아낼 자리를 내어주었다.
사랑이 이미 기운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동시에 결심했다.
울음을 더 이상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겠다고.
눈물이 진심일 수는 있다.
그러나 너무 늦게 흘러나온 진심은
결코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그날 울고 있던 그는
나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자신만을 달래고 있었다.
사랑은 눈물의 양이 아니라
끝까지 곁에 머물겠다는 의지로 증명된다.
불편함 앞에서도
함께하겠다는 선택이 있을 때
비로소 관계가 지켜진다.
그가 보여준 것은 감정의 방출이었고,
내가 감당한 것은 그 방출의 무게였다.
그날,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았다.
사랑의 끝과,
자기 회복의 시작.
그의 눈물은 종결이었고,
내 토닥임은 마지막 남은 사랑이었다.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그 울음은
관계의 무너짐이었고,
내가 다시 설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나는 그 무게를 더는 떠안지 않았다.
그는 울음을 삼킨 채 뒤돌아섰고,
나는 침묵을 안은 채 등을 돌렸다.
진심은 그제야 도착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늦은 눈물은 주소 없는 편지 같았다.
도착했지만 이미 읽을 이는 없었다.
그날,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나를 붙잡았다.
그 순간이야말로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내가 나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자리였다.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흘려보내기보다
스스로 다루는 연습을 시작했다.
회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몸에 쌓인 긴장을 푸는 일,
잠들기 전 짧게라도 글을 쓰는 일.
그런 사소한 습관들이
내 회복의 방법이었다.
숨이 막히던 새벽에도
창문 너머 바람을 들이마시며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했다.
회복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작은 반복이었다.
나에게는 그 반복이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기초가 되었다.
처음엔 서툴렀다.
울음이 다시 떠올랐고,
방 안 공기가 반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결심을 되새겼다.
남의 울음을 붙드는 대신
내 호흡을 붙잡겠다고.
떠나간 사랑을 기다리는 대신
내 하루를 세워 올리겠다고.
사랑이 끝난 자리는
텅 빈 자리가 아니었다.
그곳엔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있었다.
그의 울음은 종결이었지만,
내 울음은 출발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남의 울음에 기대지 않았다.
늦은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남의 마음을 붙잡지 않았다.
나는 나를 붙잡았다.
흔들리던 마음은 멈췄고,
마침내 제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그 끝에서 나는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