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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보조개

가장 짧은 인사, 가장 오래 남은 얼굴

by 정민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보조개는

처음엔 자주 보였다.


말끝마다, 눈웃음 사이로, 심지어 나를 놀릴 때도.


그 작은 웅덩이는

그의 마음이 나에게 열려 있다는 증거 같았다.


나는 그 보조개가 생길 때마다 마음이 풀렸다.

그건 그의 얼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부분이었다.


보조개는 우리 사이에 열린 작은 문처럼 느껴졌다.

문이 열리면 따뜻한 공기가 흘러들었고

닫히면 바람 한 줄기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여행을 가서도,

거리를 걸어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에 내가 웃으면

그는 내 웃음에 또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은 우리 사이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나는 장난처럼 그의 보조개를

손가락으로 콕콕 눌러보기도 했다.

괜히 그 자리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그럴 때면 그는

“아, 하지 마~” 하며 더 크게 웃었다.


그 시절, 그의 보조개와 나의 웃음은

우리를 지켜주는 부적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깊어질수록

그 보조개는 자취를 감췄다.


대화가 줄고, 갈등이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어느 저녁, 마늘이 살짝 탄 냄새와

식은 된장의 짠 향이 식탁 위에 엉겨 있었다.


불빛은 낮게 깔렸고,

벽시계 초침만 또각또각 소리를 냈다.


우리는 각자의 그릇을 천천히 저을 뿐

서로를 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웃지 않는 이유를 묻지 못했다.

나 역시 웃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얼굴을 오래 붙잡고

변한 기류를 더듬었다.


예전엔 흘려보냈던 표정을

하나하나 붙들며

침묵 속에서 마음의 모양을 읽으려 했다.


아무 대답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감정 대신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날, 나는 그의 웃음이 사라진 이유를

끝내 묻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웃는 법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보조개가 없네.’


그 문장은 작은 슬픔처럼,

말로 다하지 못한 상실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오자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결국 마주 앉은 날

우리는 네 시간 넘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울고, 설명하고, 변명하고,

후회하고, 또 침묵했다.


말로 채워지지 않는 틈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헤집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순간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방을 메웠다.


문득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 우리 집에 있는 약 챙겨갈 거야?”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웃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몇 달 만에 본 가장 진짜다운 웃음이었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감정 그대로의 웃음.


그때, 나는 그의 보조개를 보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방 안의 공기가 아주 느리게 식어갔다.


관계는 끝났지만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 선명히 남았다.


우리가 사랑했었다는 것.

적어도 나는 그를 사랑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끝에서

내가 본 마지막 보조개는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선물 같았다.


아주 작고, 아주 짧고,

슬펐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의 보조개를 찾는 대신

내 웃음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살피듯이.


이제는 다른 얼굴을 기다리지 않는다.

내 마음을 확인하는 일도

타인의 표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아침 햇빛에 반사된 내 얼굴,

바람에 실린 낯선 냄새,

내가 스스로를 웃게 만드는 순간을 나는 조심스레 모아간다.


그때의 보조개는 사랑의 추억만을 남기지 않았다.


내 안에서 다시 싹튼 웃음의 힘.

그 힘은, 나를 다시 걷게 했다.


오늘도 나는 그 힘으로 하루를 연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내 빛으로.

그 빛은 아주 작지만, 나를 잃지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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