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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Oct 12. 2024

작은 가방의 정체

늦은 저녁, 루프탑의 한 레스토랑에서 H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귀엽고 작은 주황색 가방을 쓰다듬는다. 추석을 맞이해서 한 카페에서 선물세트로 작게 만들어진 가방이었다. 그 작은 가방 안에는 디저트가 두 개 들어있다.


H는 덩그러니 감성을 좋아한다. 드넓은 배경 위에 자신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감성이 좋다나. 넓은 테이블 위에 만두가 하나 올려져 있다던지, 넓은 잔디 언덕 위에 나 홀로 나무 하나가 서있다던지 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낀다나.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H에게 건넬 때면 덩그러니 감성으로 세팅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H가 도착하자마자 덩그러니 가방을 알아챈다. 작고 귀여운 가방에 H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뷰가 좋은 루프탑 식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뭐, 어디든 함께라면 좋지 않으랴. 하지만 가끔 여러 장소를 누비며 서울 구석구석에서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H는 많은 순간들을 기억하고 추억을 쌓아나가는 사람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많이 기억하곤 한다. 그래서 서울의 여러 장소에서, 나와 처음 가는 장소에서 추억을 쌓는 일이 좋다. H가 서울의 여러 장소에서 나를 기억해 준다면 좋겠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여러 번 방문한다면 그것 또한 강렬한 추억이 된다. 그러한 장소는 되도록 오래 남아있길.. 오래 추억되길 바란다.


그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작은 가방을 들고 걷는 H가 말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교환을 통해 이뤄진다. 많은 경우에 무언가를 잃으면서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된다. 돈을 잃으면서 가치 있는 물건을 얻고, 일을 하면서 시간과 건강을 잃고 돈을 벌기도 한다. 물질세계에서 원자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조합되고 재구성되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작은 가방선물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는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사랑해 준다 것은 소모되는 것이 없는 느낌이란다. 0과 0이 만나서 +가 생기는, 따뜻한 마음이 생기는 느낌이다. 가방으로써 기능하진 못하지만, 그렇기에 더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가방으로서 태어난, 목적이 있는 아이가 아니다. 수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


H의 말이 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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