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스물셋이었다. 복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눈이 떠지는 대로 학교에 갔다. 걷다가 뛰다가 그마저도 제시간에 못 갈 것 같으면 돌바닥에 주저앉아 아픈 배를 부여잡았다.
햇살 좋은 날이면 버스 안으로 따스한 빛이 들어왔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무게가 있었다. 그 무게는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옷을 입고, 버스에 오르는 것까지는 허락했지만 그 이상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걸 우울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게으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피곤했다. 끝없이, 무겁게, 오래도록 피곤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아플 때마다 돌아오는 건 무심한 침묵뿐이었다. 걱정이나 관심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귀찮아하는 눈빛과 피곤한 목소리로 “또?”라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나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그때 도움을 청한 사람들도 어느 분야 전문가라면서 죄다 이상했다. 어쩌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이상한 사람만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훈계를, 누구는 흥분을, 누구는 가스라이팅을 했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 아프기로 했다. 혼자 아픈 게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덜 아팠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 들렀다가 북트럭 위에 놓인 책을 봤다. 별생각 없이 집어든 책이었는데, 펼쳐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과연 지나가려나? 이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도무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이 현실에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생각만 떠올랐다.
도서관도 갈 곳이 없어서 잠깐 쉬러 들린 곳일 뿐인 걸. 내쫓지 않고, 화장실을 쓸 수 있으며,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곳. 그리고 따뜻하니까.
아마도 그때의 나는 책 위에 적힌 몇 마디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느끼면서도 공간이 주는 그런 위로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시간은 흘렀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도 조금씩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언젠가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게 조금씩 더 힘들어졌다.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여전했다. 하지만 햇살은 더 이상 밝지도 않았다. 시작이나 희망, 출발도 아닌 그냥 햇살일 뿐이었다.
단단해졌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그저 흘러간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어쩌면 그저 무감각해졌을지도 모른다.
몸부림치던 내가 가진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곳으로, 그나마 숨 쉴 만한 곳으로. 어차피 모든 곳이 지옥이라면, 그나마 덜 뜨거운 곳을 찾아 떠나는 수밖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불편한 것들은 최대한 피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최악을 피해 차악의 차악의 차악의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언젠간 차선을 지나 최선으로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